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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t-magazine.com/ko/interview/slay-the-princesss-tony-howard-arias-and-abby-ho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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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 탐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번역, p.11
『Slay the Princess』는 ‘러브 스토리’다.
이 작품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주인공과, 공주. 그리고 그녀가 갇힌 지하실이 있는 오두막으로 이어지는 숲길.“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해설자의 목소리.
오두막 안에는 칼이 하나 있다.
플레이어는 그 칼을 집을 수도 있고, 안 집을 수도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지하 깊은 곳, 사슬에 묶인 공주가 있다.
“안녕하세요?” 하고 그녀가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안녕”라고 답할 수도 있고, “당신을 처치하러 왔다”라고 할 수도 있으며,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
가장 인간적인 첫 번째 막의 결말. 당신은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주와 함께 오두막을 탈출한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드디어, 밖으로 나왔어. 행복해…. 그런데, 행복이란 추운 건가요?“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수많은 손들이 그녀를 낚아채 간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
가장 동물적인 첫 번째 막의 결말. 당신은 해설자의 설득을 완전히 따르며, 말없이 공주를 찔러 살해한다. 그녀의 시신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다. 당신은 혼자 오두막을 나간다.
그러자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두막도, 숲도, 길도, 세계도.
당신 자신도 없다.
어느 쪽을 택해도, 정신을 차려보면 당신은 다시 오두막으로 이어지는 숲길에 서 있다. 해설자는 태엽 감긴 까마귀처럼 같은 대사를 되풀이한다.
”You’re on a path in the woods.”
──당신은 숲 속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사유로,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인다.
나는 이 작품에 푹 빠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내가 작가들에게 던진 질문은, 오직 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답변은,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미플레이어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뒤처지지 않도록, 최대한 일반적인 주제를 먼저 꺼내도록 회화를 편집했다. 그러나 원고 어딘가에서, 결국 플레이하지 않은 독자는 분명 따라오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럴 때는 직접 게임을 구매해 끝까지 플레이한 뒤, 이 원고로 돌아오길 권한다.
즉, 플레이어인 당신에게 이 원고는, 마치 언덕 위의 오두막과 같다.
자, 인터뷰를 시작하자.
기획・듣는이・글/후지타 쇼해이
듣는이/사이토 다이치
사진/요코타 유이치
편집/Jini
번역/아키야마 하야토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 있어서는 특수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곧 이성은 자신이 물질적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운명이다. 물질적 수 없다는 것은, 그와 같은 문제가 이성 자신의 본성에 의해서 떠맡겨져 있기 때문이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그와 같은 문제가 인간의 이성 능력로 모조리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제1판 머리글, 정명오 번역, p.13
등장인물:
애비 하워드:『Slay the Princess』의 개발자.
토니 하워드=알라이어스:『Slay the Princess』의 개발자.
사이토:I.N.T.편집장. 이번 기획의 제안자.
━━:인터뷰어이자, 이 원고의 작성자.
(도쿄 시내 어딘가, 널찍한 실내. 목소리와 구두 소리가 잘 울려 퍼지는 공간. “━━”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잠시 후, 아비 하워드와 토니 하워드-아라이어스가 사이토와 함께 실내로 들어온다. 모두 합류하여 인사를 나눈다.)
(“━━”가 짐가방에서 빨간 편지지를 꺼내, 하워드 부부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I can finally see you, and you can finally see me.”
—— 나는 마침내 당신을 볼 수 있고, 당신도 마침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는 편지지를 하워드 부부에게 건넨다. 부부는 편지지를 펼쳐보고, 안에 담긴 러브 레터, 즉 『Slay the Princess』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몇 줄의 영시를 읽는다.)
(부부가 감탄을 표현하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사이토:(볼이 빨개진 “━━”에게 살짝)
아휴, 너 참. 로맨틱한 남자다, 정말.
━━ 아아, 부끄럽습니다. 연애편지 같은 건 태어나서 처음 건네봤어요.
사이토:
그러니까 널 불렀지.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졌네. 정신 차려.
━━ 네.
사이토:
…좋아. 시작하자고.
(모두 자리에 앉는다. 녹음이 시작된다. 사이토가 통역사를 힐끗 본다.)
사이토:
다시 한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합시다.
우리가 이번 인터뷰의 주제로 삼은 건 사랑입니다.
이렇게 심오한 주제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옆에 앉은 통역사가 “사랑을 시작하려면 우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하고 센스 있게 통역한다.
몇 분가량, 사이토와 “——”의 자기소개.
하워드 부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두 분도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애비:(토니를 바라보며)
…당신부터, 할래?
토니:(고개를 끄덕이며)
좋아. 해볼게——
토니 하워드-아라이어스. 『Slay the Princess』의 리드 라이터이자 게임 디자이너야. 비디오게임을 만들기 전에는 신문사나 테크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어.
━━ (조급하게) 그 일들은 어떤 업무였나요?
토니:
테크 기업에서는 비영리 봉사 단체 활동을 관리하는 툴을 만들었어. 비영리는 돈이 안 되지. 회사가 망했거든. 그전에는 보스턴 글로브(미국 주요 신문사)에서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일한 적도 있어. 뭐, 그 어느 쪽도 비디오게임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지.
(“━━”, 애비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애비:
애비 하워드. 이 사람이랑 결혼했어. 원래는 과학을 전공하다가 스무 살 즈음에 전향해서 그래픽노블 작가가 됐지.
━━ (조급하게) 전향. 왜 그런 결정을 하신 건가요?
애비:
과학이든, 그림이든, 둘 다 돈이 안 됐으니까. 차라리,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자, 싶었어.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책을 일곱 권쯤 냈고, 토니를 만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어. 『Slay the Princess』에서는, 글과, 그래픽을 맡았어.
━━ 두 분이 만나신 계기가TRPG 세션이었다고 어디선가 봤습니다. 분야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셨던 건가요?
토니:
응. 특히 대학생 때 TRPG 게임 마스터를 자주 했어.
━━ 그렇군요. …음. (가지고 온 메모를 잠깐 살피며)현재도 에피소드 형식으로 2장까지 출시되어 있고 계속 제작 중인 스튜디오의 첫 작품, 『Scarlet Hollow』이 게임의 아이디어가 뉴욕 코믹콘에서 돌아오던 길에 떠올랐다고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때, 두 분은 인생에서 다음에 뭘 할지 미정이었다고도 봤고요.
토니:
맞아, 그렇지.
━━ 하지만 게임 개발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드는 일이죠. 당장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애비:
고양이 봉제인형.
━━ 네?
애비:
고양이 봉제인형.
━━ …음.
애비:
그게. 음, 내 반려묘 인형을 만들어서 팔았어. 예전에 내가 자전적 만화를 그릴 때 그 아이도 가끔 등장했는데, 독자들이 무척 좋아해 줬거든. 그래서 그 봉제인형을 만들어 판 돈으로 『Scarlet Hollow』를 시작할 수 있었어.
━━ 아, 그렇군요.
토니:
애비는 그전에도 여러 차례 킥스타터를 성공시킨 적이 있었으니까.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
━━ 생각해보니, 애비 님은『The Last Halloween』으로 2013년에 상을 받으셨네요. 당시에 스무 살 남짓이셨죠? 저도 읽어봤는데, 하루아침에 나올 만한 그림체가 아니더군요. 오랫동안 작가로서 노력해오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애비:
맞아. 언제, 얼마만큼 돈이 생길지, 그 돈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지—이런 걸 매번 계획해서,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어.
토니:
내 생각엔, 많은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가져야 할 두 가지 마인드 사이에서 균형을 못 잡는 경우가 많아. 하나는 트렌드를 좇아서 돈이 될 만한 걸 만드는 것, 또 하나는 작품에만 몰입해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 결국 이 두 가지 스타일 중간, 즉 중도를 잘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
━━ (고개 끄덕이며) 그래도 결국 ‘이 길로 가야 해!’라는 열정이 없으면 작품은 못 나오잖아요. 그 열정은 언제, 어떻게 생기셨나요?
애비:
음… 나는 열정이 없던 적이 없어. 적어도 여섯 살 때는 이미 뭔가 만들고 있었거든.
사이토: …와, 대단하네요.
애비:
열세 살 때는 그래픽노블을 그리고 있었어. 그때부터 출판을 시도하긴 했는데… 당연히 퀄리티가 형편없었지. 그런 엉망진창 작품을 수도 없이 그려왔어.
토니:
나는 애비와 정반대야. 뭔가 열정을 불태울 대상을 오랫동안 못 찾았었지.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그 분야의 프로들 속에 섞여 살아봤어.
어떤 일을 해도, 처음 몇 달은 재밌어. 보람도 의의도 보여. 그런데… 새 직장을 시작하고 2년쯤 지나면, 꼭 그만둬야만 할 상황이 오곤 했어. ‘이러다 내가 짓눌려 죽겠다’ 싶어지는 거지.
그렇게 여러 직장을 떠돌다가, 문득 깨닫게 됐어. 어릴 적부터 난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걸. 대학 시절 TRPG 게임 마스터를 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함께 창작해 놀던 기억도 떠올랐고.
그래서 그제서야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어. 친구랑 회사도 차려보고 망해도 봤고… 그러다가 애비도 ‘다음에 뭘 만들지 고민 중’이었고… 그렇게 이리저리 부대끼다 보니 비로소 알았달까. ‘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구나.’ 라고.
━━ 그렇군요. 토니 씨가 다양한 직업과 TRPG 게임마스터 경험을 쌓은 덕분에, 『Slay the Princess』의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선택지가 가능해진 면도 있겠네요.
토니:
그럴 수도 있지. 난 항상 선택지를 너무 많이 만들려 하거든. 그래서 애비랑 말다툼할 때도 있어.
애비:
편집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가만 내버려두면 당신은 메뉴를 메뉴를 막 드롭다운 형식으로 늘어놓잖아.
토니:
좀 더 많아도 괜찮았을 텐데.
애비:(작게 한숨을 쉬며)
그래서 늘 내가, 이 사람의 선택지를 빼앗아버리는 거야.
토니:(인터뷰어를 보며)
…솔직히 말하면, 이건 UI 얘기 같아. 『Scarlet Hollow』에서는 텍스트 창이 작아서, 한번에 선택지를 많이 보여주기 어려웠어. 그래서 『Slay the Princess』에선 화면 옆 공간에 세로로 선택지를 늘어놓았지. 덕분에 좀 깔끔해졌어.
━━ 저도 지금, 제 시야 오른쪽 위에 두 분에게 드릴 질문들이 죽 늘어서 있는 걸 스크롤링하고 있습니다만….
애비&토니:(조용히 웃음)
━━ 문득 떠오르는 게, 『Slay the Princess』 그래픽 스타일 말인데요. 연필 하나로만 표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작 시간을 과도하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여러 가지 버전을 풍부하게 표현하려고 하신 거죠? 실제로 애비 씨 혼자 전부 담당하셨고요
애비:
응, 맞아.
━━ (갑자기 점점 말이 빨라지며)전 그 제약이 예술적으로도 아주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게임에서 공주는 정말 다양하고 기괴한 형태로 변신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 하나의 공주’라는 일관성을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잖아요. 그 이유가 모든 그래픽을 애비 씨 혼자 그려서, 동일한 필치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제작상의 제약이 오히려 예술에 좋은 영향을 준 거죠.
애비:(조금 당황한 듯)
…음.
━━ (덩달아 당황해 하며) 아, 그러니까…….
사이토:(침착하게)그런 그래픽 스타일이 작품의 테마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가요?
애비:
아…그러니까. 음, 죄송해요. 그리는 과정 자체가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워.
……그래도, 당신이 말한 건 맞다고 생각해. 전부 내가 그렸다는 건, 결국 ‘이 세상을 내가 어떻게 번역해냈느냐’라는 것이니까.
아… 맞다. 언젠가 누가 이런 얘길 했어. ‘똑같이 사람처럼 보이는 공주의 표정인데도, 게임 초반과 후반을 비교하면 달라요’라고.
그게, 공주에의해서 내가 성장한 건지, 아니면 내 성장이 공주에게 투영된 건지는…… 뭐라 확답하기 힘든데.
그런데, 하나 확실한 건 하나 있어. 그렇게 그리는걸 내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는 거야. 나는 저렇게 그리고 싶었어. 왜냐하면 공주가 어떤 모습이든, 내겐 언제나 그녀고….
토니:(미소 지으며)
팬들이 보내오는 질문에 늘 놀라곤 해. 게임 어딘가를 콕 집고 ‘이 아이디어 어떻게 떠올린 거죠?’라고 물어와. 그들 눈에는 모든 게 무척 의도적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거겠지.
하지만 사실은 우연 인거야. 무의식 중에 나온 거랄까.
예를 들어 지금 말한 그래픽 얘기를 해보자면, 게임 마지막 파트, 마지막 오두막의 공주를 떠올려봐. 첫 번째 막의 공주와 마찬가지로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어. 구도도, 상황도 꽤 비슷해.
그런데 모두가 느끼잖아. 그녀가 표현된 선 자체가 전혀 달라. 선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훨씬 또렷해. 그래서들 ‘이거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거죠?’라고 묻지만….
애비:
늘 진실만 말할 필요는 없잖아?(웃음)
토니:
하하… 그래도, 그래도 한번 얘기해보자고.
마지막 오두막 장면은, 플레이어가 제일 처음 공주와 맞닥뜨렸던 상황을 반복하는 셈이야. 그런데, 실제로 작업하다 보니, 그녀의 배우스러움이랄까 감정의 폭을 좀 더 드러내줄 그림이 필요하겠다’ 싶었지.
그래서 아트를 추가 하기로 히고, 애비가 작업에 들어갔어. 이미 만들어놓은 에셋에 보충하는 거니까, 당연히 1막 때의 공주 스타일에 맞추려고 했는데….
도무지 안 됐어.
너와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그 선에,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거야.
그래서 애비가 애를 먹는 걸 보고, 이런 얘길 했어. ‘너는 게임을 상당 부분 완성했어. 그러니까 너는 그녀를 더 깊이 알게 된 거야. 니 선에도 그녀의 형태에도 확신이 생긴 거지. 그렇다면 그 스타일로 가자—그 스타일이 맞다’라고.
(제1막)
(최종막. 단,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최종막”이라는 식으로 장을 구분하지 않는다.)
애비:
즉, 처음에는 그녀 자신도 뭔가 Sketch 같았던 거야. 자기 자신이 뭔지 잘 몰랐던 거지. 이야기도, 제작 과정에서도,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할까.
(주: ‘Sketch’는 영어로 밑그림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딘가 수상쩍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함.)
토니:
게다가, 너 그때 1막 그래픽 삼 일 만에 다 그려버렸잖아. 상황 자체가 달랐지.
━━ 3일 만에 그걸 전부요?
사이토:
그렇군요. 저는 게임 개발 프로듀서라서 비용 대비 효과에 민감한데, 당신들의 아트워크는 가성비가 정말 뛰어나네요. 연필화 스타일도 그렇지만, 이펙트도 역동적이고 재미있더군요. 배경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효과 같은 거요. 작품 테마와도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어디서 착안하신 건가요?
토니:
멋있지? 그게 ‘보일 이펙트’라고 해.
애비:
뭔가 ‘보통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그래서 여러 방법을 실험해봤어.
토니:
『Slay the Princess』에서 쓴 기법 중 상당수는 전작을 만들면서 익혔어. 『Scarlet Hollow』는 여러모로 성공적이었지. 한 번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작품을 좋아해줬고, 판매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사람들이 게임을 일단 사서 해보도록 만드는’ 게 가장 어렵더라고.
SNS를 보면 어떤 게임이 유명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잖아. 아름다운 게임플레이, 물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트레일러. 이런 것들은 비주얼 노벨에는 없어. 아무리 아트의 표현이 풍부하다고 해도, 결국 그건 정지화면일 뿐이야. 캐릭터와 배경, 그걸로 끝이지.
그래서 우리는 게임의 그림체가 더 역동적으로 보이도록, 그리고 Sketch하게 느껴지도록 『Slay the Princess』의 그래픽에 이펙트를 추가했어.
이 게임에 성우를 기용한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어. 목소리가 있으면 이 게임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애비:
이것 역시 예술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지점이야. 이는 현재 시장에서 비주얼 노벨을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아티스트로서 이 장르 안에서 더 새로운 스타일을 실험해 보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지.
사이토:(조용히, 일본어로)
흠. 먼저 물어볼까…… 괜찮지?
━━ 네, 부탁드립니다.
사이토:
게임 제작 프로듀서로서, 꼭 두 분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 지금 제가 프로듀싱하고 있는 작품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출시되고 있는데요. 이 에피소드 형식에서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그리고 시도해봤지만 좋지 않았던 경험이나 교훈을 듣고 싶습니다.
토니:
킥스타터는 별로였지.
물론 그걸 통해 목표를 달성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좋았지. 하지만 문제는 Steam과의 궁합이 너무 안 좋았다는 거야. 그러니까, Kickstarter를 통해 Steam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키가 배포되잖아. 그 키로 게임을 등록한 계정으로 플레이어가 리뷰를 남겨도, 알고리즘에 반영되지 않는 거야. 결국 자금을 모집하는 단계부터 응원해줬던 가장 열성적인 팬들이 정작 출시일에는 거기에 없게 되는 거지. 그건 정말 실수였어.
그리고 Steam의 앞서 해보기. 그것도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어.
스토리성이 강한 게임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판매하는 구조적 약점은, 플레이어가 다시 돌아올 거란 보장이 없다는 거야. 플레이어가 에피소드 1을 플레이한다, 재미있다고 느낀다, 에피소드 2도 한다, 즐거워한다. 하지만 에피소드 3이 나왔을 때 과연 다시 돌아와 줄까? ……그건 모르는 일이야.
『Scarlet Hollow』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나온 지 곧 1년이 돼.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더라고. 그렇다면 리플레이성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해. 결국 개발 과정이 늘어나게 되는 거지.
애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Scarlet Hollow』에 관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에서 앞서 해보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에피소드마다 타이틀을 따로 나눠서 판매하거나, DLC로 팔기보다는 말이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할 때, 제작자로서 신경 써야 할 건 미스터리든 클리프행어든 확실히 준비해 두는 거야. 이야기 안에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거지. 다행히 그 작품은 리플레이성이 있어서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해도 재미있거든.
사이토:
두 분은 『Scarlet Hollow』를 잠시 내려놓고 『Slay the Princess』를 만들었죠. 그 정도로 재정 상황이 어려웠던 건가요?
토니:
집세랑 식비를 내면 간신히 균형을 맞출 정도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락세였어. 백업으로 Kickstarter 자금이 있긴 했지만, 예금 잔액은 계속 줄어들었고. 당신도 프로듀서라면 알겠지. 출시한 날에는 매출이 확 치솟다가, 그다음부터는 하루하루 줄어드는 거야. 새로운 에피소드를 출시해서 작품에 연료를 보탤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애비:
게다가 작품의 구조상,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출시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토니:
기하급수적으로 말이야.
사이토:
하지만 그런 시기에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융자나 투자가 아닐까요?
토니:
빚을 지는 건 싫었어.
애비:
나쁜 사이클이 시작될 것 같았거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립하고 싶었어.
토니:
우리가 확신했던 건 『Scarlet Hollow』의 재미뿐이었어. 사람들이 게임을 ‘해보도록 만드는’ 과정이 제일 어려워. 한 번만 플레이해 준다면, 모두가 좋아하게 돼고.
애비:
너무 재미있어서, 미쳐버려.
토니:
그러니까 우리의 경영 판단은 이거야. 만약 짧은 게임을 『Scarlet Hollow』와 동일한 퀄리티로 출시할 수 있다면, 그건 앞서 해보기가 아닌, 완성된 게임이니까 사람들이 사놓고 묵히지 않고 바로 플레이해 줄 거라는 거지.
이 판단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 『Slay the Princess』의 첫 데모 버전을 출시했을 때였어……『Scarlet Hollow』의 매출이 다섯 배로 뛰었거든. 『Scarlet Hollow』는 그걸로 흑자를 낼 수 있게 됐어.
애비:
결론. 첫 번째 게임을 홍보하고 싶다면, 두 번째 게임을 만들면 돼.
토니:
둘 다 좋은 게임이 아니면 소용없지만 말이야.
사이토:
굉장하네…..하지만 데모를 만드는 것 자체도 돈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쪽에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 자체가 결단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애비:
내가 확신을 가졌던 건, 토니의 원안을 봤을 때였어. 나중에 『Slay the Princess』로 발전하게 될 진짜 초안 말이야.
나는 가끔 본가에 돌아가서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곤 해. 그럴 때 토니를 집에 혼자 두고 가는 거지. 그러면 이 사람은 항상……
정신 나간 짓을 벌이거든.
그래서 그때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가 데모를 준비해놨더라고. 내가 플레이한 진짜 가장 처음의 데모였어. 그래픽은 딱 한 장. 그, 5분 만에 전부 클리어하면 나오는 이른바 ‘굿 엔딩’이라는 게 전부였어.
그 그림은 완성판에 꼭 남겨야 한다고 내가 주장했었는데, 일단은.
나는 그 데모를 플레이하고 직감했어.
“이거, 된다.” 라고.
이거,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토니:(눈을 피하며)
그건…… 그러니까…… 맞아, 리스크 헤지라고 할 수 있지.
(인터뷰어들을 바라보며)그러니까, 가장 처음 출시한 데모는 고작 보름 만에 만들었어. 그리고 그 데모의 반응을 보고, 완성판이 어느 정도 규모로 할지 결정했지. 별로라면 더 작은 게임으로 만들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 데모를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이었거든. 그때 결심했어. 오케이, 이거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하고 말이야.
사이토:
(“━━”을 바라본 뒤, 모두를 둘러보며)좋아. 이걸로 프로듀서로서 내가 듣고 싶었던 건 다 들었어. 이제 메인 루트로 돌아가자.
이러한 단순한 형태의 언어를 바라볼 때,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정신적 안개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명확하고 투명한 활동과 반응을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단순한 과정 속에서도 우리의 더 복잡한 언어 형태와 단절되지 않은 언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시적인 형태에 새로운 형태를 점차적으로 더함으로써 복잡한 형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 방식을 따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반성(Generality)에 대한 우리의 갈망입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청색 책』
━━ (목을 가다듬으며)비즈니스적인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 아트 스타일의 선택과 제작 과정은, 두 분에게 있어 분명한 악전고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 결과로 탄생한 작품에 어떤 필연성이 느껴집니다.
━━ 생명의 섭리은 반드시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 안에는 공포스러운 폭력성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살아남아 예술을 만든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하고, 때로는 서로를 해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두 분의 그 악전고투가 다면성을 지닌 공주로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닐까요?
토니: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의도적이었어.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인식의 유동성과 관계 속에서의 진실의 모순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찾아낸 Sketch한 스타일은, 주제적으로도 우리가 만들고자 한 것과 완벽하게 어울렸어.
공주는 물처럼 변하지. 비주얼도, 스토리도, 꿈처럼 불확실해. 그래서 캐릭터들이 놓인 환경조차도 몽환적으로 변화해 가고….
━━ (성급하게)다만, 그 작품 속에서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거울입니다. 주제적으로도, 그래픽 처리 방식으로도, 그 거울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토니:(날카로운 눈빛으로)
그걸 눈치챈 플레이어는 많지 않지.
(“━━”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팬터마임을 한다.
보이지 않는 거울에 손을 뻗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이윽고 “아하!”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리로 돌아와 박수를 친다.
하워드 부부는 유쾌하게 웃는다.)
━━ 나는 이렇게 해서, 그 거울이 불변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토니:(고개를 끄덕이며)
그래픽의 기술적 장치까지 모든 플레이어가 발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많은 시선이 그 거울에 이끌렸을 거야.
그 거울은 다른 그래픽 아트 스타일과 달리 직선적으로 그려졌고, 이펙트도 적용되지 않았지. 그래서 플레이어에게 이게 세계와 단절된 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거야.
그 느낌을 비록 말로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거울에는 묘한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걸 모두가 알아차렸을 거야.
━━ (조용히)영어의 ‘리플렉션(Reflection)’이라는 단어에는, 사물을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와, 모습을 비춘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죠.
토니:
맞아.
━━ 이 게임은 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어요.
토니&애비:
바로 그거야!
━━ 주인공은 공주를 ‘리플렉션’ 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불안함까지 포함해서 상상하죠…. 그러면 그곳에는 상상한 그대로의 공주가 있어요. 이것은 아주 특별한 ‘타인’의 존재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 ‘우발성’이라는 걸 우리는 항상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상상하거나 두려워한 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공주는…… 주인공에게 이상적인 타인였던 거라 생각합니다.
토니:(기뻐하며)
그렇지!
━━ 그리고 타인에게 ‘사랑해요’라고 전하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죠. 그러니까……I love your game.
애비:(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말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의미가 있어.
━━ (안도의 숨을 쉬며)다행이에요.
애비:
방금처럼…… 단 한 번의 인터랙션(접촉/상호작용)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잖아. 특히 처음 하는 인터랙션은 정말 중요해. 이후에 이어질 모든 상호작용에 색을 던져주니까.
타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당신는, 당신의 또 다른 버전(판/版)이야. 당신의 몸 안에 살아 있는 당신은, 당신 바깥에 있는 누구에게도 모든 걸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당신를 어떻게 인식하든 간에, 당신는 결국 당신으로서, 홀로 존재하는 거야.
세상이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 하지만 받아들여야 해. 원래 그런 거니까.
토니:(차분하게)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 지닌 당신의 판이 당신의 길을 다듬어주기도 해.
애비:(차분하게)
그래. 타인과의 인터랙션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너 안의 미지의 부분이 나올 수도 있지.
사이토:(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젊은 시절, 비주얼 노벨을 통해 사랑을 배웠어요. 비주얼 노벨에 나타난 사랑의 형태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고민했죠.
저는 사랑을 생각하고 느끼기 위한 매체로서 게임이 최고라고 믿어왔고, 『Slay the Princess』가 그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해줬습니다.
토니:
고마워.
애비:
정말, 고마워.
사이토:
…그렇다면. “━━“는 여기서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 아뇨. 아직 거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지만, 여기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이 있습니다.
토니:
……oh.
━━ 읽겠습니다.
”For now we see only a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The Long Quiet와 Shifting Mounds가 마주했을 때, 저는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두 분은 이러한 종교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채택하셨나요?
(주: The Long Quiet는 공식 한국어 번역에서 “적막”, Shifting Mounds는 “변이하는 집합체”로 번역됨.)
토니:(잠시 침묵한 뒤)
…정말 많은 생각을 탐구했어.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
…음.
내 아버지는 브루스 리를 무척 좋아하셨어.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무술을 배웠어. 다니던 도장도 브루스 리의 유산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불교를 포함한 동양의 종교적 사고방식에도 일찍부터 익숙해졌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도(道)“이 내 안에 스며들었어. 대학에서도 신화와 종교에 대해 많이 공부했지. 이런 영향들은 항상 나를 관통하고 있어. 그러니까…….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Slay The Princess』라는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탐구(Exploration)라고 생각해.
작가로서 우리는 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어. 『Scarlet Hollow』는 굉장히 현실적인 작품이지. 그 미스터리에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없고, 논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물질적이야. 그래서 우리는 모든 디테일을 먼저 철저히 다듬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텍스트를 쓰기 시작했어.
반면 『Slay The Princess』는 변화무쌍하고 확장성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 처음엔 개념만 있었고, 글을 쓰는 과정은 그 개념을 탐구하고, 논리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것이었지.
『Slay The Princess』의 구성 요소는 매우 단순해. 주어진 임무와 환경. 숲, 오두막, 칼, 공주. 그리고 1막의 결말은 이 요소들과 마주한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가능성을 순열과 조합으로 풀어내는 탐구였어.
그 탐구는 우리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했지. “이런 상황에 놓이면 플레이어는 어떻게 할까? 우리가 설정한 이 규칙 속에서 ‘공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던져졌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음,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전제 조건이 너무 많군. 이 인터뷰를 읽고 있는 여러분은 『Slay the Princess』를 플레이해 보셨겠죠?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989270/Slay_the_Princess__The_Pristine_Cut
어쨌든. 최종 버전의 게임 구조는 이래.
플레이어가 다섯 개의 루트를 플레이하고, 마지막에 메타적인 이야기가 그것들을 모두 회수하는 구조야.
즉, Shifting Mounds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신이 현현하는 거지.
하지만 초기 버전에서는 플레이어가 공주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었어. 플레이어의 사고가 더 이상 논리의 고삐를 잡지 못할 때까지 말이야.
━━ 그러면 거기에….
토니:
신이 나타나는 거야. 그녀가 신이 되는 거지.
그로 인해 플레이어 역시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느낌이었어.
이 초기 버전의 구조를 우리는 충분히 검토했어. 그리고… 깨달았지. 한 번의 플레이로 신이 되는 것보다, 여러 길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걸.
그렇게 구조를 재구성하자, 공주의 신격 자체도 변화하기 시작했어. 플레이어의 사고를 통해 신이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이제는 그녀 자체가 태생적으로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게 된 거야.
━━ 그 작품의 모든 루트가 반드시 종교적 성찰로 가득 차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각 루트가 하나의 가능한 사랑의 형태로 보이죠. 예를 들어, 주인공과 공주는 다양한 “판“에서 자주 서로를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그 대사들은, 서로를 너무나 깊이 생각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싸우게 되는 연인의 다툼처럼 읽히기도 하죠.
그리고 그런 씁쓸한 경험조차 결국엔 ‘Shifting Mounds’라는 신에게 바쳐지는 거예요.
토니:
이 개념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한 종교적 성찰은 일종의 확대경 같은 것이었어. 신격과 죽음, 변화와 필멸성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였지.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드러난 많은 생각들이… 동양 사상과 유사했어. 특히 도교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지.
물론 서양적 사상도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어. 예를 들어 Shifting Mounds가 깨어나기 직전의 공주는… 거의 그리스도처럼 보였을 거야.
무슨 말이냐면 말이지.
이 고통과 아픔, 폭력으로 가득한 끔찍한 삶을 넘어선 곳에,
그녀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아?
우리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녀와 마주하고, ‘공주’라는 캐릭터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 그 본질이란?
토니: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Unconditionally(조건 없이 / 완전히), 사랑하고 있어.
그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든 간에, 그곳에는 용서가 존재해.
━━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죠. “주는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한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토니:(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니까… 그래… 신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게임을 만든다면, 종교적 성찰은 당연한 거야.
━━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종교적 모티프가 단순한 장식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두 분이 직접 삶의 고통을 겪어내며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두 분의 인생이 있었고, 그 경험에서 얻은 해석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고대의 가르침을 빌려온 거죠. 그래서 이 텍스트에는 힘이 있는 겁니다.
토니:
맞아. 이건 정말 잘 전해지지 않아.
우리 스튜디오 얘기를 하자면, 『Scarlet Hollow』는 에피소드 형식의 비주얼 노벨이고, 앞서 해보기도 진행 중인 아주 긴 작품이야. 이 작품이 끝까지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이 작품 자체만으로는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었지. 그래서 우리가 『Slay the Princess』를 만들었고……그건 사실이긴 해. 그리고 우리는 스튜디오로서, 팬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최대한 솔직하게 전하고 싶어. 전하고 싶긴 한데….
하지만 가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고! “아, 그러니까 『Slay the Princess』는 여러분의 라이프워크를 완성하기 위한 마케팅용 작품이군요.” 아니야, 그건 아니야. 사실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절대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
애비:(힘차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 만들지 않았을 거야. 열정이 없다면, 만들 이유도 없지. 우리는 그 순간 우리가 가진 기술로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 그게 전부야.
토니:
맞아.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진심을 담아. 언제나 100%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
━━ 이제 서양 사상에서 동양 사상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Shifting Mounds“의 대사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Nothing is immutable. everything exists in relation to everything it isn’t. there is no constant, there is no center.”
── 변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해요. 불변은 없어요. 중심 또한 없어요.
━━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 구카이(空海)라는 위대한 승려가 설파한 내용과 매우 흡사합니다. “색즉시공(色即是空)”이라는 개념인데요. 이러한 사상 역시 알고 계셨나요?
토니:
그 문답 장면을 쓸 때 나는 어느새 책장 앞에 서서, 도(道)의 가르침이나 불교 경전을 여러 번 펼쳐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그때 찾은 가르침을 여기서 인용해 볼게.
“이름 붙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그 문답을 쓰는 건 도전이었어.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말이나 그림으로는 전할 수 없는 걸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려 했으니까.
애비:
하지만 우리는 가진 것만으로 해내야 했어.
토니:
전달할 수 없는 걸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불교의 가르침, 특히 선(禪)의 가르침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마음가짐을 만들어줬어.
The Long Quiet와 Shifting Mounds의 논의 주제는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을 품고 있어.
하지만 우리에게는 논리의 산물인 언어와, 표상을 번역한 그래픽밖에 없었지.
그래서 우리는 결국, 아이디어와 하나가 됐어.
애비:
당신이 추구하는 걸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그 주제를 향한 감정과 생각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냥 하나가 된 거야.
━━ 그렇게 예술을 끝없이 파고든 끝에 나온 건 뭐였는거요?
토니:
시(詩)였어.
선의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그걸 가르칠 때 논리적으로 모순된 질문을 던져.
왜냐하면, 그건 생각한다고 해서 풀리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그것 자체와 하나가 되고…질문 그 자체가 되어서 살아보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툭’ 하고 울리고, 깨닫게 돼.
━━ (갑자기 깨달으며)선문답인가요! …하지만… 아니, 그쪽으로 깊이 들어가는 건 위험할 것 같네요. 이건 서양적인, 언어와 논리에 기반한 인터뷰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바로 Critical(비평적/위험/중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토니:
물론이지.
자연은 다양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개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여 생명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 나간다. 그러나 만약 자연 자체의 고유한 핵심이 어떤 무시간적인 것, 따라서 전혀 불가해한 것, 즉 현상과는 전혀 이질적인 물자체이며, 모든 형이하학적(자연적) 존재와는 다른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면, 자연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무한한 시간을 통해 그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 핵심이 바로, 우리 내면과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의지‘인 것이다.
──알투어 쇼펜하우어, 『물자체와 현상의 대립에 관한 몇 가지 고찰』, 호소야 사다오 번역
━━ 작품 속에서 거울은 일종의 구성체이자, 그것을 인식하는 오감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애비:
그래.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
━━ 그게 산산이 부서지죠. 그리고 나서 The Long Quiet는 Shifting Mounds와 마주하게 됩니다.
토니:
음음.
━━ 그런데… 오감이 부서져 버렸다면, 저는 거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이것이 아마 나의 생사관일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은 그 너머에 타인를 그려냈어요. Shifting Mounds를 배치했죠. 그건 결국, 죽음 이후에도 분명 누군가는 거기에 있고,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두 분이 믿고 있다는 뜻 아닌가요?
━━ 그래서 묻고 싶어요.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강한 힘을 두 분은 왜, 어떻게 가지게 된 걸까요?
토니:(머리에 손을 얹으며)
…Jesus(신이시여 / 맙소사), 대체 무슨 질문이야.
━━ 죄송합니다.
토니:
아니, 아니, 괜찮아. 그건….
…직관이야.
『Shifting Mounds』를 통해 공주가 회수될 때마다, 주인공은 거울을 마주해. 그럴 때마다 육체는 점점 썩어가고, 그건 결국 사시관상(死屍觀想) 같은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 네. 일본 불교 전통에도 **구상도(九相圖)**라는 게 있습니다.
시체의 부패 과정을 단계별로 그려내면서, 모든 중생의 덧없음을 관상하게 하죠.
토니:
음. 하지만 모든 게 사라진 뒤에도, 너는 여전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어. 그걸 두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거지. 확실히 그래, 논리적으로 보면 이상하지. 그런데도 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뭔가가 있다고 느껴. ‘무(無)’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 그 작품을 플레이한 지금, 저도 그 생각에 조금 기울게 됐어요. 왜냐하면 그 거울이 깨진 뒤에도, 분명 그녀가 거기 있었으니까요. 애비 씨의 드로잉 덕분에 Shifting Mounds가 그곳에 계셨고…. 그 마주침의 순간은 마치 천수관음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9/Senju_Kannon.jpg
국보 『견본착색 천수관음상』 – 헤이안 시대 후기
사이토:
두 분은 그의 의견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사생관은 일본인이라면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문화는 본질적으로 ‘타자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거든요. 이건 게임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의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은, 타자의 존재를 완전히 확신하고 있죠. 그 확신의 강한 힘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겁니다.
━━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걸까요?
애비:(토니를 바라보며)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제, 개념을 두고 다양한 탐구를 해왔어.
사랑은 단순히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모습이든, 심지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였다고 해도, 그리고 모든 상호작용이 끝나버린 뒤에도, 그건 여전히 사랑이야.
그래서 그걸 탐구할 가치는 충분히 있어. 그게 우리가 그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것 중 하나야.
토니:(안도한 듯)
넌 정말 말을 잘 정리하는구나.
애비:(웃으며)
나는 짧고 간결한 걸 좋아하거든. 그래도 덧붙이자면, 그 작품에서 중요한 건, 공주가 그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신’이 아닌 존재라는 거야.
━━ 이제 엔딩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토니:
물론이지.
━━ 이 작품에는 크게 세 가지 엔딩이 있죠.
1. The Long Quiet와 Shifting Mounds가 하나로 융합되어, 무한한 너머로 나아가는 엔딩.
2. 주인공과 공주가 손을 맞잡고 오두막 밖으로 나가는 엔딩.
3. The Long Quiet가 Shifting Mounds를 죽여서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엔딩.
━━ 저는 이 세 가지가 사실, 같은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엔딩은 겉보기엔 나머지 두 개와 다르게 보이지만, 모든 것이 항구적이라면 분별지*(分別智)는 사라지고, 결국 The Long Quiet와 Shifting Mounds 역시 구분이 없어지죠. 논리적으로 봐도 결국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역주: 불교에서 ‘분별’은 사물의 선악과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인식 작용으로, 집착과 번뇌의 원인이 되지만, ‘무분별지’는 그러한 분별의 본질을 통찰하여 분별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를 의미함)
━━ 다만,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는 과거에 그들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조차 죽게 되죠. 그래서 슬퍼요. 언뜻 보면 배드 엔딩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세계의 구조로부터 함께 벗어나게 되죠.
━━ 그렇다면 두 분이 말하고 싶었던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닐까요? 떠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지만, 그 ‘떠나는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닌가요…. (문득 정신을 차리며) 지금 제가 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토니:(난처한 듯)
…뭐라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애비:(밝게 웃으며)
여보, 뭔가 멋지고 시적인 대답을 떠올려 봐!
토니:(아주 천천히)…그,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리플렉트(Reflect)해라고 부탁하는 거야. 이 세계에서의 죽음의 본질과, 그 강렬한 변화의 힘을.
(점점 더 명확하게)…그러니까 말이지. 모든 해답은, 그 자체의 논리 체계 안에서는 정당해. 정당하다면, 그건 각각의 ‘길’이 되는 거야.
그리고 모든 길은 결국, 너를 같은 상황으로 이끈다.
그래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인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거야. 너의 선택이 중요한 거지.
애비:(확신에 차서)
모든 엔딩은 ‘내가 바꿔야 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걸 리플렉트하게 만들어. 왜냐하면,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니까. 우리 모두에게 찾아와. 그리고 게임 안에서는 그 죽음이 몇 번이나 찾아와.
변화는 당신의 행동으로도, 아니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어. 모든 건 결국 변하게 돼.
토니:
맞아. 그래서 우리가 모든 엔딩에 담은 바람은, 플레이어가 ‘두려움’을 버리는 거야.
두려움을 버리는 것, 그게 바로 궁극적인 사랑이거든.
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이걸 어떻게든 말로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엔딩들이 너희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냐는 거야.
그리고 네가 ‘이게 맞아’라고 느끼는 엔딩에 도달했을 때, 그 순간엔 분명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있을 거야. “그래, 이게 맞아. 이걸로 된거야.” 그런 느낌이 반드시 찾아와.
만약 그걸 끝에서 느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두려움을 버린 거야.
사이토:
문득 떠오른 건데요. 토니 씨, 당신은 심리학을 전공했죠? 그 분야에서 참고한 게 있나요?
토니:
…음. 심리학도 제대로 다룬다면 하나의 가르침이 될 수 있어. 타인을 이끌어 그 사람이 본래의 모습, 자연스러운 자아를 찾도록 돕는 거지.
확실히 게임을 쓸 때는 심리학적 접근이 더 중요해. 왜냐하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플레이어니까.
플레이어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무수한 조합이 가능해. 이건 『Slay the Princess』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
그 게임은 이야기와 선택으로 움직여. 플레이어의 역할은 항상 능동적이지. 스스로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직접 손으로 선택지를 고르는 거야.
근데 더 일반적으로 보면 말이지. 애초에 비디오 게임이란 게 그런 거잖아. 심지어 스토리가 없는 게임조차 플레이어가 주인공이야. 『팩맨』조차도 이야기야.
예를 들어, 네가 『팩맨』을 플레이하면, 그건 내가 했던 플레이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돼. 그리고 사이토 씨가 『팩맨』을 하면 또 다른 캐릭터가 탄생하는 거야.
(한숨)게임을 만들 땐 결국 모든 사람을 고려해야 해. 그렇지?
애비:
그리고 모든 사람을 붙잡는 건, 불가능하지.
토니:
맞아. 예를 들면… 어느 플레이어의 이야기인데 말이야.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레이터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해서 결국 5분 만에 공주를 죽였지. 그리고 나서 Steam 리뷰에 이렇게 썼어. “이 게임, 너무 과대평가된 것 같네. 5분 만에 끝났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두 웃는다)
애비:
그리고 말이지, 다른 사람이 “근데 다른 선택지는 눌러보지 않았어?”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아니, 나는 그런 롤플레이는 하고 싶지 않아. 안 해.”라고 대답했대. 그게 참… 뭐랄까…… “아, 네, 알겠습니다..” 이런 느낌이더라니까. (웃음)
사이토:(친근하게)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두려움을 모를지도 모르겠네요.
애비:
그 사람들한테는 두려움 같은 게 필요 없는 거야. 왜냐면, 이미 그걸 정복해버렸거든!
사이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알고 있죠. 그리고 당신들의 게임은 플레이어가 두려움을 버리게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게 마치 심리학적인 치료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레이어로 하여금 두려움과 마주하게 하고, 그걸 구체화시켜서, 결국엔 놓아버리게 만드는 거죠.
토니:
궁극적으로, 그게 예술가의 일이야. 모든 예술은 그걸 위해 존재해. 사람들이 자신과는 다른 시각을 마주하고, 그 시각을 자기 안에서 리플렉트하게 만드는 거지.
애비:
공포라는 장르는 특히 그 점에서 뛰어나. 왜냐면, 바로 그 두려움과 계속해서 마주하게 만들잖아. 『Slay the Princess』에도 그런 공포 요소가 들어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나 스스로도 약간 무서운 걸 좋아하거든. 어두운 테마를 탐구하는 걸 즐기고 있어.
토니:
훌륭한 예술, 게임, 이야기란 건 다, 그것이 거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거울인거야.
플레이어는 그걸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리플렉트하고 또 리플렉트해. 자신이 리플렉트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로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작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고, 그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거야. “달라져라고!” 하고 떠들어대는 대신에 말이지.
『Slay the Princess』에는 문자 그대로의 거울과, 또 다른 ‘두 번째 거울’이 있어. 그 두 번째 거울이 바로 ‘공주’야. 플레이어가 굳이 그걸 알아챌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그녀는 너의 생각과 행동을 비추는 리플렉션이고, 플레이어는 그 리플렉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게 돼.
타인의 마음에 닿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걸 돕고, 내면에 숨어 있던 새로운 자질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
━━ 문득 궁금한데요. 공주는 단순한 거울상가 아니라, ‘살’을 지닌 존재잖아요. 물론 현실적인 의미의 살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형상으로서. 이 경우… 그녀가 ‘왕자’가 아닌 ‘공주’였던 이유는 뭔가요?
애비:
그건, 주인공과 공주의 대비를 더 뚜렷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야. …예전엔 이걸 더 확실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토니:
음양(陰陽).
애비:
맞아! 그 둘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제야. 공주는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주인공은 어둠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공주의 다양한 모습들은 모두 너의 ‘거꾸로 맺힌 상’이야.
당신이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그녀는 그걸 반영해서 당신에게 다시 행동으로 보여줘. 그건 당신이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당신의 새로운 면모일 거야.
결국 그녀는 네 ‘갑옷’을 벗겨내고, “이게 타인에게 보이는 너의 모습이야”라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인 거야.
그래서 둘은 반대되는 존재로서, 그녀는 여성적이고, 너는 남성적인 특성을 띠고 있어. 그 대비가 계속 이어지는 거지.
내레이터가 이렇게 말하잖아. “그녀는 너에게 특별하고, 소중하며, 아름다운 존재야.“
나, 그걸 처음 생각했을 때 정말 깊이 고민했어. “왜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특별할까? 왜 그녀가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질까?” 하고.
토니:
하나 덧붙이자면, 이야기 예술의 전통 속에서, 특히 비디오 게임에서는 ‘공주’라는 존재가 굉장히 전형적이고 역할이 정해진 대상이야. 공주라는 캐릭터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누군가에게 구해지길 기다리는 존재로 그려지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이 그녀에게 투영돼 있지. 그 전형이 너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걸 뒤집으면 ‘갑옷을 깨뜨리는 효과’가 정말 강력해져.
그리고 단순히 말하자면, 『Slay the Princess』라는 제목은 아무도 쓰지 않았더라고. 게다가… “왕자를 죽여라”보다는 “공주를 죽여라”가…좀 더 잘 팔릴 것 같지 않아?
애비:
그러니까, 여기서도 시장성과 창작 의도의 절충점이 드러난 거야.
뭐, 사실 스스로 해놓고도 “왜 그렇게 했더라?” 싶은 것들이 있잖아. 공주가 아니라 왕자가 아니었던 이유도, 그런 느낌이야.
사이토:
마케팅적인 이유와 ‘공주’라는 전형적 이미지를 활용한 것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어요. 혹시 그녀에게 구체적인 모델이 있나요?
토니:
아니, 없어.
애비:
공주의 모델은 수많은 작품 속에 존재하는 ‘공주’라는 개념에서 추출된 전형일 뿐이야.
토니:
서양에서는 ‘공주’라는 존재가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하나는 유럽, 특히 영국 왕실의 이미지. 그리고 또 하나는 디즈니지. 비디오 게임에서는 대체로 후자 쪽에 더 기울었지. 그래서 그 기울어진 각도를 그냥 활용한 거야.
애비: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토니:
귀여운 공주.
사이토:
실례인 건 알지만, 미디어로서 이 질문은 꼭 해야겠네요. 그 둘은, 혹시 두 분 자신을 모델로 한 건가요?
애비&토니:(웃으며)
아니, 천만에!
━━ (웃으며)그럼,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 창조했나요?
애비:
음… 우선, 자신이 괴물 같은 존재라는 걸 서서히 자각해가는 ‘주인공’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로 ‘플레이어’라는 점에 우리는 굉장히 끌렸어.
당신은 1막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칼을 쥔 채 지하실로 내려가는 선택을 하지.
그러면 그녀는 너에게 정말로 냉혹하게 굴어.
게임을 플레이한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지.
“왜 그녀는 그렇게까지 차갑고 잔인한 거죠?”라고.
하지만 말이야… 나도 한 마디 할게.
냉혹했던 건, 바로 너야.
그 지하실로 내려갈 때, 그 손에 칼을 쥐고 있었던 건 너였어.
네가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야. 하지만 그녀는 그런 너를 봤어.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그녀와의 관계에 영향을 줬지. 그녀는 너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너 역시 그녀에게 가혹하게 반응해. 그게 반복되면서 모든 게 점점 엉망진창이 돼 가는 거야.
그 과정을 통해 너는 계속해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돼.그리고 결국 깨닫게 되지.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구나.” 네가 누구인지, 스스로를 리플렉트하고, 그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 가는 거야.
토니:
러브 스토리를 진정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특히 서양 게이머들이 흔히 가진 태도와는 정반대야.
그들은 게임을 ‘감정’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바라보거든. 게임을 단순한 승패의 문제로만 보고, 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지.
그런 태도는 마치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과 같아.
그래서 『Slay the Princess』는 그 ‘갑옷’을 벗겨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 게임 자체의 구조와 힘을 통해서 말이야.
주인공, 즉 플레이어의 괴물성은 그 서양식 사고방식이라는 갑옷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한 장치야.
생각해 봐. 너는 1막에서 지하실로 내려가. 공주는 인간처럼 보이고, 너 역시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상황이 뭔가 이상해. 내레이터가 하는 말도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고, 2막에선 모든 게 마치 루프처럼 반복돼. 머릿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혼란은 점점 심해지지. 그러다 다시 공주를 만나게 되고――“뭐야, 이게 대체 뭐야?!”
너는 더 이상 그녀를 믿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녀가 변해버렸기 때문이야.
그리고 결국, 너는 거울과 마주하게 돼. 네 괴물 같은 손과, 그 모습을 보게 되지. “젠장… 나조차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 이 순간, 네가 갖고 있던 모든 기존의 신뢰는 완전히 부서져. 마음이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감정적으로 돼.
그렇게 되면, 네 마음은 러브 스토리와 훨씬 더 깊게 연결될 수 있어.
너와 공주 사이에 논리적인 것이 아닌, 감정적인 유대가 싹틀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거지.
사이토:
하지만, 그때 공주에게 개성이 없다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겠죠. 이 작품에서 공주는 다양한 것들을 리플렉트하고 있어요. 수많은 역할과 모습으로 플레이어를 마주하죠. 그런 무수한 역할들은 대개 캐릭터의 개성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메타적인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단순한 ‘장치’로 전락하기 쉽거든요.
━━ 그런데 공주는 그런 틀에 갇히지 않고 강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걸 해낼 수 있었나요?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게임은 수도 없이 많잖아요. 그런데 왜 두 분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토니:
캐릭터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작가가 그 캐릭터의 ‘신발을 신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묻는 거지. “얘는 지금 뭘 느끼고 있을까?”, “이 캐릭터를 형성하고, 이 자리로 이끈 건 어떤 경험일까?”.
애비:
그리고, “이 캐릭터가 미래에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라고.
토니:
맞아. 그리고 공주의 핵심에는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어. 플레이어는 그녀에게 있어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중요한 존재야. 그런 깊은 감정이 마치 통주저음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존재하는 거지.
글을 쓸 때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였어. 왜냐하면, 보통 더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캐릭터의 과거 경험들이 있잖아. 어떤 영화를 봤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학교에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렸는지 같은 것들 말이야.
하지만 1막의 공주는 아주 기본적이야. 그녀가 어디에 붙잡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어. 자신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아주 희미하게만 알고 있지.
그런데 2막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져. 우리는 1막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경험치’로 삼아서 유추해낼 수 있어.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어와 공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경험들이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녀는 어떤 개성을 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결괴를 충실하게 리플렉트하는 그녀는 플레이어와의 1막 경험으로 만들어진 상자 속에 딱 들어맞게 돼.
애비:
그 변화야말로, 그녀에게 플레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거야.
변화 자체가 그녀의, 당신을 향한 사랑이야. 그녀는 당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 그 감정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표현하지.
정말, 어려운 상대지. 왜냐면 그 사랑은 때론 폭력적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집착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거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녀는 당신이 원하는 걸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니까.
그게….
음… 미안.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까먹어버렸네.
━━ 일본어에는 “순애(純愛)”라는 말이 있는데, 이걸 영어로 “Pure Love”라고 하면 잘 전달될까? 순수한 사랑, 인거 같습니다.
애비:
그래, 맞아. 그거야.
공주는 바로, 중심에 있는 희망이야.
그녀는 단순히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서 “여기서 나가고 싶다”며 막연히 생각하는 약한 아이가 아니야.
그녀는 계속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거야——
“나, 태어나고 싶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많은걸, 모든 걸 경험하고 싶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지를 당신이 가로막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이야기가 너에게 그녀를 죽이라고 말했으니까.
토니:
맞아. 그게 그녀의 핵심이야. 하지만 그녀는 그 핵심조차도 어렴풋이밖에 느끼지 못해.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조차 알지 못해. 왜냐면,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여정은 플레이어의 여정과 아주 비슷해. 플레이어가 자신을 알아가는 길은 공주가 자신을 알아가는 길이기도 하니까. 둘 다 왜 그걸 원하는지도 모른 채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갈망하고 있지. 그 길은 나란히, 끝없이 이어져.
애비:
당신이 지금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정말 중요한 거야.
왜냐하면, 당신이 없었다면 이것도, 저것도, 그 모든 것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당신이 있기 때문에, 공주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있잖아, 우리 이걸 함께 해보자! 봐, 이 세계를 봐! 정말 아름답잖아!”
(“━━”, 눈물이 흘러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사이토:(당황하며)
하지만 꼭 그런 인격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더 삐딱하게 만들어도 됐고, 더 사악하게 만들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 인격을 선택했어요. 그 이유가 뭡니까?
토니:(쿨하게)
그녀가,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이토:
젠장, 진짜 교묘한 답변이네요! 그렇다면, 미디어란 입장에서 일부러 더 짓궂게 묻겠습니다. 애초에 그 설정이라면, 공주가 굳이 오두막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아도 됐잖아요. 플레이어에게 더 사악하게 다가가서, “있잖아, 나가는 건 그만두자. 그냥 여기서 나랑 계속 놀자” 이렇게 유혹할 수도 있었을
그런데도 그녀는 분명하게 그 오두막을 나가고 싶어 해요. 긍정적이고, 전진하려고 해요. 그리고 전 그런 그녀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도 굳이 그 인격을 선택한 이유가…그게… 도대체 왜죠?!
애비:(신탁처럼)
Independence. (자립 / 독립)
다른 사람의 자립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녀 안에 있기 때문이야.
당신과 그녀, 둘 다 각각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서로를 떠나 각자의 길로 가는 것도 가능했지. 그리고 그녀는 ‘신(神)’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신을 파괴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왜냐.
당신은,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당신들은, 서로를 사랑하니까.
핵심이 바로, 그녀를 붙잡기도 했었어.
왜냐면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선…당산과 그녀는 이 세상에서 계속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그건 단 하나의 가능성. 반면에, 둘이 함께 밖으로 나간다는 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사이토, “——”, 압도당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토니:(조금 미안한 듯이)
…혹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알고 있어?
━━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반응하며)『국가』에 나오는 그거요?
애비:(웃으며)
토니는 하루에 한 번은 꼭 플라톤 얘기를 꺼내거든.
토니:(미소 지으며)
으음… 한, 이틀에 한 번 정도야!
애비:
뭐, 도움이 되긴 하지.
토니:
그래.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에는 이런 비유가 나와.
동굴 속에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 있어. 그들의 뒤에는 불빛이 있고,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계속 그곳에 있어왔어. 그래서 그들이 유일하게 아는 ‘현실’은 불빛에 의해 벽에 비춰진 자신들의 그림자뿐이야. 그 그림자는 현실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진짜 현실의 희미한 모조품일 뿐이야.
여기서 플라톤은 이렇게 묻지. “만약, 그 사슬에 묶인 사람들 중 한 명이 밖으로 나가 진짜 세상을 본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동굴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밖으로 함께 나가자고 말한다면, 과연 그 사람은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An Illustration of The Allegory of the Cave, from Plato’s Republic, drawing by 4edges
이 비유는 『Slay the Princess』를 해석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공주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이 세계 밖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진짜 같은, 더 확실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하지만 그녀는 그걸 표현할 수 없어. 그저, 그 느낌만 있을 뿐이야. 그래서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너와 함께 나가고 싶어 하는 거야.
사이토:
오두막을 나가는 엔딩은 정말 걸작이에요. 다른 엔딩들은 일본 작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함께하는 엔딩, 죽음이 없는 세계 같은 것들은 익숙한 이야기죠.
하지만 단순히, 밖으로 나간다. 그 엔딩에 나는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모든 역할을 벗어던진, 가장 순수한 공주와 함께 나가는 순간의 기대와 불안이 짧은 텍스트로 놀랍도록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토니:
그 엔딩이 만들어진 과정은 사실 정말 재미있었어.
처음엔 Shifting Mounds와 함께 ‘신’으로서 나가는 엔딩. 그리고 1막에서 5분 만에 끝내는 사람들을 위한 이른바 “엔딩” 도 있었고.
자, 이제 우리는 마지막 막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그때 생각이 떠올랐어. 신이 아닌, 순수한 공주와 함께 나가는 엔딩을 만들면 어떨까?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주인공이 공주를 거부하는 엔딩이었어. 왜냐하면, 칼은 항상 선택지로 존재하니까. 결국 그녀에게 칼을 건네거나, 혹은 그녀를 죽이는 걸 선택하는 거지.
하지만 그 엔딩들을 만들면서 나는 뭔가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었어.
생각해봐. 1막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칼을 집느냐, 아니냐잖아. 칼을 들면, 공주의 성격은 확 바뀌어.
그런데 마지막 오두막 엔딩에서 칼을 들지 않는 선택 이후의 엔딩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거야.
즉, 칼을 들지 않았을 때의 논리적 결말을 만들 수가 없었어. 그 순간 깨달았어. “뭔가 빠져 있다. 여기에 빈틈이 있어.”
그리고 우리는 곰곰이 생각했어.
“만약, 칼을 들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선택은, 대체 무엇을 의미일까?”
애비:
주인공으로서 공주와 함께 오두막을 나가는 것. 그건 ‘신’으로서 그녀와 융합해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란 질문인 거지.
토니:
맞아.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또 대답하려고, 수없이 시도했어. 하지만 결국, 다시 이 결론으로 돌아오게 되더라.
답 따위는 없어.
이건 해답이 불가능한 질문이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야.
그리고 말이지, 결국 이 게임이란 게 ‘미지(未知)’라는 것 자체를 전달하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이 미지와 마주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맺어온 관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해답이 불가능한 질문이 존재하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어도——그 엔딩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했어. 다른 엔딩들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 있었거든.
그래서 확신했어. “이 단순한, 둘이서 함께 오두막을 나가기만 하는 엔딩을 만들어야 한다.” 이 엔딩은 여기에, 이렇게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그렇게 느꼈어. 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 아뇨, 저는 잘 알 것 같아요. 두 분은…길(道)을 알아낸 것 입니다.
「도(道)」는 문자 그대로는 ‘경로’를 의미한다. 이는 ‘진로(the Way)’, ‘절대(the Absolute)’, ‘법칙(the Law)’, ‘자연(Nature)’, ‘최고의 이성(Supreme Reason)’, ‘방식(the Mode)’ 등으로 번역되어 왔다. 이 번역들은 틀린 것이 아니다. 도교 신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질문하는 주제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자 자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물을 품고 있는 것이 존재하며, ‘하늘’과 ‘땅’의 존재 이전에 생겨났다. 얼마나 고요한가! 얼마나 적막한가! 그것은 홀로 서 있으며 불변한다. 스스로 회전하되 자신에게 위태로움을 초래하지 않고, 우주의 어머니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을 ‘경로’라 부른다. 마지못해 나는 그것을 ‘무한’이라 부른다. ‘무한’은 ‘신속’이며, ‘신속’은 ‘소멸’이며, ‘소멸’은 ‘회귀’이다.” ‘도(道)’는 ‘경로’라기보다는 오히려 ‘통행’에 가깝다. 그것은 ‘우주적 변화’의 정신, 즉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로 회귀하는 영원한 생성이다.
──오카쿠라 텐신, 『The Book of Tea』, 오케타니 히데아키 번역
━━ (천천히)전 이 인터뷰가 좋은 결과물이 길 바라며, 기대와 불안을 품고 두 분의 게임을 계속 플레이했어요.
━━ 그래서였는지, 토니 씨가 말한 그 논리의 구멍에 저도 빠져버렸어요.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었어요. 끝없이 미끄러지고, 어떤 질문에 쐐기도 딱 안 걸리더라고요.
━━ “이건 아니야. 잠깐 쉬자.” 그렇게 생각하며 게임에서 손을 뗐어요.
━━ 그리고 게임을 떠난 채로 계속 리플렉트하고, 또 리플렉트하고, 또 리플렉트했어요. “이 게임은 도대체 뭐지?” 그조차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 그렇게 지쳐버린 채, 다시 돌아와 게임을 다시 켰을 때… 처음 나오는 그 주의 문구에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 This is a love story.(이 이야기는 연애담이니까요.)
━━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 그 문구를 언제, 어떤 마음으로 썼나요?
토니:
……음. 언제 썼더라.
아.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출시합니다!” 라고 X에 올릴 공지 초안을 작성하고 있을 때였네.
나는 이것이 한마디로 어떤 게임인지 말해 주려고 했지.
그래서 글을 썼어.
그리고 완성된 글을 읽었을 때——너무 좋았어.
정말로…행복했어.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어. “이걸, X를 안 보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알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애비:
그 문구 자체를, 비평해보자면——
공주는 처음부터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 문구는 “플레이어인 당신은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라는 전제 조건을 제공하는 거야.그리고, 플레이어인 당신 또한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이해를 불러일으켜.
처음부터, 이미 서로를 리플렉트하고 있는 거야. 둘 다, 이게 사랑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물론, 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플레이어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녀를 만나기도 전부터, 어딘가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어렴풋이 걸 알고 있었다면?
그건, 바로 “운명의 만남”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토니:
……알겠어. 네 질문에는,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긴 버전부터 말할게.
이 게임은 이항 대립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는 연애담이니까요.” 이 문장만 떼어내서 이야기하고 있지. 하지만 그 주의 문구 전체에는 이런 메시지도 함께 있었잖아. “이건 엄청 무서운 공포 게임입니다.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니 각오하세요.”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어떤 공포에 직면하더라도 마음을 굳게 다잡고 헤쳐 나가세요. 갑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은 없습니다. 아울러, 잘못된 결정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관점과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연애담” 라고 의외의 한 방을 날리지. 공포와 사랑. 이 둘은 언뜻 보면 모순돼 보여. 그리고 그 모순이 불안을 자극하지. 그 불안으로 플레이어가 두르고 있는 ‘갑옷’을 벗겨내려 한 거야.
이게 긴 답변.
그리고, 짧고도 가장 진실된 답은.
(잠시 침묵)
…그건 이성이 아니야.
논리가 아니야.
글을 다 쓰는 순간, 나는 알았어.
애비:(속삭이듯)
공주와 함께 오두막을 나가는 엔딩을 썼을 때처럼 말이지.
토니:
그래…바로 그거야.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했어.
“이거 좋네. 게임으로 만들자!”
사랑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에서 흘러나온다.
── 스즈키 다이세쓰, 『선』, 쿠도 스미코 번역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도쿄에 있는 한 사찰음식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술잔이 오가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도 더욱 깊어졌다. 물론, 그 사적인 대화의 내용까지 여기서 낱낱이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말하고 싶다.
그 사찰음식 식당은 2층에 있었다.
들어갈 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식당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대신 현관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현관문을 나서자 일본식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단풍과 은행나무가 밤의 어둠 속에서 선명히 빛나는 그 정원. 그곳의 오솔길은 부드럽게 경사를 이루며, 밤의 도쿄의 큰길로 이어졌다.
우리는 식당 지배인이 들고 있던 등불에 의지해 그 숲길을 함께 걸어 내려갔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서로를 따뜻하게 포옹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귀로에 오르며, 밖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You’re on a path in the woods.”
──당신은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만약 그 숲길 위에서 이 말을 전했다면, 분명 그들은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기회는 있을 거야.
왜냐하면 인터뷰가 끝난 뒤, 토니 하워드 씨로부터 사이토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으니까.
”토니의 동의를 얻어, 그 편지의 초역(抄譯)을 덧붙이고 나는 여기서 붓을 놓는다.
사이토 님께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초대해 주시고, 멋진 인터뷰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lay the Princess』의 의도를 깊이 이해해 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길었던 논의 시간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그 밤의 기억은 우리 마음 속에 잊을 수 없는 보물로 남았습니다.
팀원 분들께도 저희의 감사 인사를 꼭 전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우리가 작별 인사를 나누기 전, ‘악’과 ‘구원’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짧게 의견을 나눴던 거, 기억하시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저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마지막 순간에는 구원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애비와 저, 그리고 여러분과의 오래도록 이어질 우정을 바라며.
토니 드림
토니, 애비, 고마워.
정말 멋진 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