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https://int-magazine.com/ko/interview/fellow-travellers-chris-wright/
クリップボードにコピーしました
Interview #8 2025.10.13
인간은 이야기를 말하는 생물이다. 이야기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로 생계를 꾸려가고 싶다”고 생각하게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주를 거점으로 한 Fellow Traveller는 “내러티브 게임의 가능성 확장”을 기치로 내세우며, 개성적인 서사를지닌 게임을 여럿 세상에 선보여 온 주목받는 퍼블리셔다.
『Citizen Sleeper』, 『Paradise Killer』, 『Genesis Noir』, 『No Longer Home』, 『Orwell』, 『1000xResist』⋯⋯. 새로움을 찾는 인디 게임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타이틀들일 것이다.

(Fellow Traveller가 현재 퍼블리싱 중인 타이틀들)
Fellow Traveller는 결코 화려한 대작으로 메가 히트를 연발하는 퍼블리셔는 아니다. 그러나 “예술적인 게임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업계의 상식을 뒤집고, 일관되게 “Fellow Traveller다운”게임을 계속해서 출시하며 인디 게임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소규모 인디 퍼블리셔가 험난한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플롯을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퍼블리싱 철학에서 시장 전략, 커뮤니티 구축, 그리고 디벨로퍼와의 관계까지 ― Fellow Traveller의 창립자 겸 CEO 크리스 라이트에게 물었다.
메인 인터뷰어는 역시 소규모 퍼블리셔로서 인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 남자, I.N.T. 공동 편집장 겸 WSS Playground 대표 사이토 다이치.
기획·듣는이/사이토 다이치
편집/Jini
집필/지바 슈
촬영/이요다 아키히코
1. 「사운드」를 찾는 여행

사이토:
WSS Playground의 사이토 다이치입니다. 오늘은 듣는이를 맡게 되었습니다.
Fellow Traveller는 〈내러티브〉를 표방하며 인상적인 작품들을 연이어 퍼블리싱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내러티브 지향 인디 퍼블리셔라 자부하고 있기에, 오늘은 업계의 선배, 아니 스승으로서 크리스 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리스:
Fellow Traveller의 크리스 라이트입니다. 스승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 가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 동료입니다. 격식 차리지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이토:
그렇다면 바로 핵심부터 묻겠습니다. Fellow Traveller에게 있어 〈내러티브〉란 무엇일까요?
크리스:
내러티브, 그것은 우리 브랜드에 있어서의 “사운드”입니다.
퍼블리셔를 세우려고 했을 때, 제 머릿속에는 젊은 시절을 보냈던 90년대 영국의 인디 레코드 레이블들이 있었습니다. Rough Trade Records, 4AD,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Chemical Undergrounds.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친구들과 차고에 모여 발신했던 작은 레이블들 말이죠.
그 시절 레이블마다 고유의 “사운드”와 “플레이버”가 있었고, 어떤 밴드를 좋아하게 되면 같은 레이블의 다른 밴드도 좋아하게 되었죠. 레이블 자체가 세련된 레코드 부티크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도 그런 멋진 퍼블리셔가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디벨로퍼마다 내놓는 작품은 다르지만, 오디언스에게 “이 퍼블리셔에서 나오는 게임이라면 틀림없다”라고 생각하게 할 만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었던 겁니다.
다만, 설립 초기부터 내러티브 중시를 내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이토:
본격적으로 내러티브를 표방하게 된 건, 이전 이름이었던 Surprise Attack 에서 Fellow Traveller로 리브랜딩한 뒤였죠. Surprise Attack 시절에는 어떤 테마를 내걸었고, 왜 노선 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크리스:
2011년에 Surprise Attack을 세웠을 때는, 호주산 게임을 판매하려고 했습니다.
이 방침에는 201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제가 놓여 있던 상황이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원래 미국 대기업 게임사 THQ의 호주 지사에서 마케팅 디렉터를 맡았고, 자회사인 Blue Tongue 스튜디오로 이직했습니다. 마케터로서 현장의 크리에이터들과 직접 접할 수 있었던, 자극적이고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제 커리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래 호주에는 해외 대기업의 지사가 많이 있었고, 업계인 대부분이 그런 외자에 의존해 일하고 있었죠. 그런데 바다 건너 불황의 영향으로, 2010년 전후에 그런 지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한 겁니다.
Blue Tongue, 그리고 THQ 호주 지사도 정리 대상이 되어 저도 직장을 잃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THQ 본사 자체도 파산하고 말았죠.
그 시기 수많은 업계 동료들이 저와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재취업하려 해도 대기업들이 일제히 철수한 터라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독립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도 쓴맛을 본 동료로서, 호주 인디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호주의 게임”을 아이덴티티로 삼기로 한 겁니다.

(전신인 Surprise Attack의 로고. 마스코트는 닌자)
크리스:
하지만 함정이 있었습니다.
게임의 산지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겁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캐나다산이든 프랑스산이든, 게임은 게임일 뿐. 플레이어에겐 재미있느냐 아니냐가 전부였습니다. “호주산”이라는 사실 자체가 상업적인 우위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현지에서 히트작이 나오면 환영받지만, 자국 시장이 작기 때문에 로컬한 열기만으로는 그 영향력이 제한적입니다.
이런 좌절도 있어 초기 경영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 2, 3년은 퍼블리싱 사업에서의 수익은 거의 제로였죠. 회사의 부업인 마케팅 컨설턴트 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상태였습니다. 대표였던 저는 무급 노동이었고요.
사이토:
이해합니다. 저도 예전에 운영하던 회사가 위태로워졌을 때 광고 대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돈으로 크리에이터에게 급여를 건넸습니다. 이런 흔한 경험담을 공유해봤자 트라우마 때문에 마음만 아플 뿐이지만요……
크리스:
2015년에 낸 『Hacknet』(개발: Team Fractal Alligator)가 워낙 크게 히트를 쳐준 덕분에,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호주산 게임의 회사”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브랜딩을 다시 생각해야 했죠.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저희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진정한 우리의 “사운드”가 무엇인지―회의를 거듭한 끝에, “이야기”가 우리 흥미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직 내러티브를 표방하지 않았던 Surprise Attack 시절의 히트작 Hacknet)
크리스:
예산이 부족한 인디 게임에 있어 이야기는 금맥입니다.
게임에서 독창성을 내려 하면 할수록 비용이 듭니다. 예컨대, 3D 그래픽을 유니크하고 볼 만하게 만들려면 엄청난 기술과 자금이 필요합니다. 또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면 설계와 프로그래밍에 손이 많이 갑니다.
하지만 이노베이션 비용이 가장 낮은 영역, 그것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게임에서의 이야기는 미개척의 프런티어(Frontier)입니다. 게임의 수십 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감히 뛰어들 만한 가치가 있었죠.
그리하여 2018년에 Fellow Traveller로 재출발했습니다.
사이토:
리브랜딩 이후, “내러티브의 Fellow Traveller”라는 인식은 일본 게임 팬이나 업계인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퍼졌습니다. 2020년까지 『Neo Cab』, 『In Other Waters』, 『Paradise Killer』, 그리고 『Suzerain』 같은 야심작을 연달아 발표했고, 모두 화제가 되었지요.
이렇게 라인업을 둘러보면, FT가 퍼블리싱한 작품은 제각각이면서도 어딘가 통하는 냄새가 느껴집니다. 그 일관성이야말로 크리스 씨가 말한 레이블로서의 “사운드/테이스트”가 아닐까요. 리브랜딩 이후 6~7년 동안 FT가 “사운드를 고르는” 척추를 이렇게 굳건히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크리스:
디벨로퍼들이 가진 모험심 덕분입니다.
FT가 퍼블리싱하는 작품들은 장르, 세계관, 아트 스타일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한 야심 만큼은 공통되어 있습니다. 인디 씬에서는 언제나 표현 혁신에 도전하는 디벨로퍼가 등장합니다. 그런 모험심 가득한 스튜디오를 돕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디오 게임을 스토리텔링의 매체로서 앞으로 전진시키고 싶습니다.
사이토:
Fellow Traveller가 그렇게까지 “새로움”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요?
크리스:
새로움, 즉 이노베이션이 인디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AAA 대작에도 이노베이션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늘 비슷한 장르에 비슷한 메커니즘의 게임이 주류를 차지합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비즈니스적으로 리스크를 크게 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디 게임 씬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새로운 흐름이 일어납니다. 이 사이클이야말로 비디오 게임의 본성입니다. 제가 처음 게임에 접했던 1980년대에는, 매일같이 혁신적인 요소나 미지의 장르가 등장했어요. 신작이 나올 때마다, 놀라움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Kaizen Game Works 개발 Paradise Killer. Vaporwave와 Y2K적인 미학을 담은 독특한 캐릭터와 세계관이 특징인 미스터리 ADV)
크리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그 진보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업계 대기업은 대작에만 예산을 퍼붓게 되었고, 혁신 도전을 기피하게 된 겁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게임이라는 매체에 실망과 체념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제 경이로웠던 나날들은 사라져 버렸다고 말이죠.
그 인식을 바꾼 건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인디 게임 붐이었습니다. 작지만 혁신적 아이디어로 가득한 인디 게임들을 보고, 저는 황금기의 귀환을 예감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본 적 없는 것과 마주했을 때의 전율 같은 놀라움과 열정을 게임에 되찾고 싶었습니다. 퍼블리싱 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러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이토:
그런 신선한 놀라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디벨로퍼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크리스:
기획 단계에서 논의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1. 그 게임이 만들어내는 감각이나 감정은 무엇인가?
2. 어떻게 하면 그 감각이나 감정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즉, What 과 How 입니다.
우리 FT에는 그 두 가지를 성립시키기 위한 요소를 뽑아낸 리스트가 있고, 각 항목을 디벨로퍼와 함께 검토합니다. 리스트에는 “플레이 스킬의 숙련”, “흥분”, “소셜한 연결”, “경쟁”등, FT 작품에서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게임에 요구하는 감정이나 즐거움은 다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와 취향이 겹치는 오디언스의 정곡을 찌를 지점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사이토:
FT 작품에서 가장 중시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크리스:
『발견(Discovery)』, 『공감(Empathy)』, 『몰입(Immersion)』 이 세 가지입니다.
“발견”은 여러 장르의 게임에 깃들어 있습니다. 퍼즐은 가장 알기 쉬운 형태로 그 예를 보여주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같은 오픈월드 RPG에서 물리적 움직임이나 환경 관찰을 통해 얻는 “발견”도 있습니다.
내러티브 게임에서의 “발견”이란,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까,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를 발견하는 것 입니다. 그 발견이 놀라움을선사하고,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됩니다.

(『CITIZEN SLEEPER』의 고귀한 길고양이. 본줄기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보상이라는 단어도 정의해야 합니다.
보상에는 외재적(extrinsic) 보상과 내재적(intrinsic) 보상이 있습니다.
외재적 보상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승인·인정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제를 클리어했을 때 칭찬받거나, 아이템을 얻는 식이죠.
반면 내재적 보상은 플레이어 자신이 찾아내는 것입니다. 게임 내에서 아무 실질적 보상도 없는 도덕적 결단을 내렸다고 해봅시다. 아이템도 없고, 칭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속으로 “나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라는 만족을 느낍니다.
FT 게임의 예로는 『Citizen Sleeper』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선택에 따라 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데, 친밀도가 오르거나 공략에 유리해지는 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거의 모든 플레이어는 쓸모없음을 알면서도 매일 먹이를 주지요. 먹이를 주고 교감하는 것 자체 가 보상이 되는 겁니다.
크리스:
‘공감’이란, 게임 속 캐릭터를 실존하는 것처럼 느끼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내러티브 게임에서 성공하기 쉬운 유형은, 플레이어를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 세우고, 그 감정을 체험하게 하고,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게임입니다.
『Papers, Please』가 어떻게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 게임에서는 서로 반발하는 양극단의 정치적 압력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강요받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규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그 규칙은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만들어져 있어 양심을 괴롭힙니다.
복잡한 캐릭터를 전하는 것은 게임만이 가능한 스토리텔링입니다. 물론 영화도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캐릭터의 시점에 온전히 이입할 수는 없습니다. 게임이라면 훨씬 직접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Papers, Please』)
크리스:
세 번째 포인트인 “몰입”은, 얼마나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참고 예는 명작이라 불리는 많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오랜 세월에 걸쳐 “몰입”의 디자인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해 왔습니다.
“몰입감”을 완성하려면 설정, 세계관, 스토리, 사건 등을 모두 아울러서, 플레이어가 시간과 감정을 투자할 만한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공법으로 하려면 아름다운 그래픽, 정밀한 시스템 등 엄청난 개발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디 게임의 좋은 점은, 물리적·예산적 제약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In Other Waters』 같은 게임은 비주얼은 미니멀하지만, 풍부한 텍스트를 통해 플레이어의 상상 속에서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Jump Over the Age가 개발한 『In Other Waters』. I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심플하면서도 공들인 UI가 특징)
때로는 플레이어의 상상력은 포토리얼한 CGI에 뒤지지 않는 세계를 그려냅니다. 제가 자란 1980년대의 게임은 바로 그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거친 픽셀과 텍스트로 그려진 장소가 우리에게는 온 세상이었고, 리얼이었던 거죠.
사이토:
퍼블리셔로서 디벨로퍼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Fellow Traveller ― “여행의 동반자”라는 이름에는 퍼블리셔로서 디벨로퍼와 어떻게 협력해 나갈지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크리스:
정확합니다. 게임 개발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파트너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여정은 디벨로퍼 자신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디벨로퍼를 최우선에 두고, 그들의 여행을 지원하는 데 철저히 임하고 있습니다.
본래 Fellow Traveller라는 말은 역사적 용어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적극적 행동은 취하지 않는 동조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죠. 퍼블리셔는 디벨로퍼의 예술적인 이념에 크게 공감하지만, 스스로가 크리에이터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위치임을 늘 자각하며 크리에이터들을 뒷받침하자는 결의가 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거죠.

(Fellow Traveller 로고)
사이토:
디벨로퍼가 무엇보다 원하는 지원은 무엇인가요?
크리스:
대부분의 디벨로퍼가 원하는 것은 단연코 개발 자금입니다. 그다음은 마케팅이지요. 하지만 이건 제 지론입니다만, 최고의 퍼블리셔가 제공하는 최고의 가치는 ‘파트너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디벨로퍼들은 보통 1~3명 규모의 작은 팀입니다. 그들은 늘 고독하게 지내고, 3년에 한 번 신작을 낼 때만 외부와 접점을 갖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외부”인 퍼블리셔와의 교류는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2주마다 디벨로퍼와 미팅을 합니다. 물론 제작이나 마케팅을 논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접점을 이어가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개발의 책임을 함께 짊어지고, 정신적 부담의 일부를 덜어주기 위해서죠.
대부분의 디벨로퍼는 이런 일상적 미팅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이토:
저 역시 퍼블리셔가 디벨로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우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퍼블리셔로서 퀄리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게임을 즐겨주는 플레이어에 대한 의무로서 말이죠. 그러다 보면 디벨로퍼에게 의견을 내야 할 때도 생깁니다. FT에서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조정하고 계신가요?
크리스:
무엇보다 창작 면에서 최종 결정권은 디벨로퍼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FT의 핵심 철학이며 계약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도, 디벨로퍼가 밀어붙일 권리가 있습니다. 퍼블리셔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설득의 시도 뿐입니다.

사이토:
이론적으로는 이해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디벨로퍼의 작품이고, 제 마음속으로도 그들이 결정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것만은 제발 하지 마”싶은 일을 디벨로퍼가 고집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제 경험상 “이건 하면 반드시 유저가 떠난다”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크리스 씨도 그런 충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크리스:
아니요, 없습니다.
사이토:
없다고요!?
크리스:
개선을 요구할 때는, 외부 컨설턴트나 저널리스트의 모크 리뷰 같은 제3자의 피드백을 참고합니다. 예컨대 “이 부분의 스토리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플레이어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같은 식으로 전달합니다.
디벨로퍼가 피드백에 저항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의 디벨로퍼는 퍼블리셔든 제3자든 피드백을 원합니다. 눈으로 보았을 때 스토리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혼란스러운 점은 없는지 너무나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그들의 창작을 저해하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이토:
진척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작가라는 존재는 본래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 생물이잖아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질질 끌기 일쑤고요. 저도 1년이나 기다린 끝에, 디벨로퍼로부터 아무런 진척도 보고받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크리스:
우리도 그다지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네요. 충분한 시간만 주면 마감일까지는 게임이 완성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제때 맞추지 못하지만요. 게임의 출시 예정일이라는 건, 꿈처럼 덧없는 것이죠.
예외는 『Citizen Sleeper』의 Jump Over The Age 정도일까요. 그들은 마감 기한을 지키는 지상 유일의 디벨로퍼라고 생각합니다.

(Osmotic Studios가 개발한 『Orwell』. 당시에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출시되었다)
크리스:
『Orwell: Keeping an Eye On You』의 Osmotic Studios도 독일인답게 꼼꼼했습니다. 총 5개의 에피소드를 매주 1편씩 공개하는 형식으로 판매했는데, 매주 정확히 맞춰서 출시하더군요.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만은 출시 4시간 전에 치명적인 버그가 발견되어 부득이하게 출시를 연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늦어진 건 6시간뿐이라서 큰 문제 없이 넘어갔지만요.
게임 개발 프로세스는 복잡하고 불가해하며, 예측 불가능합니다.
저는 퍼블리싱 팀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물 위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안정합니다. 수면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답을 붙잡으려다가는 뒤집혀서 물에 빠져버리기도 하겠지요.
사이토:
저는 때때로 퀄리티나 진척 문제로 디벨로퍼와 싸우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출자자”라는 사실이 걸립니다. 치사해 보일 수 있지만, “돈 내는 건 우리다”라는 분노가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면 끝장이니 차마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요⋯⋯.
크리스:
다른 인디 퍼블리셔들에 비해, Fellow Traveller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회사 재정이 안정적이기 때문이죠.
우리 사업은 두 팀으로 나뉩니다. 인디 게임 퍼블리싱을 담당하는 퍼블리싱 부문, 그리고 대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 ― 특히 해외 기업의 호주 내 마케팅을 지원하는 에이전시 부문입니다.
다행히도 이 컨설팅 부문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퍼블리싱 쪽에서 구멍이 생겨도, 그쪽 수입으로 메울 수 있는 겁니다.
에이전시 비즈니스는 “오늘 일하면 내일 이만큼 받는다”는 식이라 재정 전망을 세우기 쉽습니다. 반면 퍼블리싱은 “오늘 일하고 2~3년 뒤에야 분배를 받는다”는 불안정한 모델입니다. 잘되면 장기간 수익을 내지만, 잘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두 개의 기둥으로 회사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제 정신적 균형도 마찬가지죠.

크리스:
퍼블리셔에게 디벨로퍼는 고민거리이자, 동시에 사람을 고양시키고 인생을 바꿔버리는 마법입니다.
우리는 그 마법을 두세 번쯤 목격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함께할 수 있다면 말로 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가장 큰 불행은, 게임이 망했을 때입니다. 그런 경험도 몇 번 했습니다.
투자가 보답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디벨로퍼가 인생을 걸고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 외면당하는 것은 더 큰 비극입니다. 눈앞의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려는 디벨로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퍼블리셔에게는 그 모습을 직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업계의 참가비 같은 것이죠.
사이토:
마치 연애 이야기 같네요.
크리스:
실연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은 시간뿐이겠지요.
실패에 직면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건 디벨로퍼의 케어입니다. 힘들어도 “더는 생각하지 말자,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합니다.

(Pikselnesia가 개발한 『Afterlove EP』.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주제로 한다)
크리스:
개발 현장의 비극은 상업적 실패만이 아닙니다.
2025년 2월 출시되는 『Afterlove EP』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Coffee Talk』로 알려진 모하메드 파르미가 리드 크리에이터를 맡았지만, 제작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둥을 잃었지만, 개발팀은은 제작 지속을 결단했고, 우리도 계속 지원했습니다.
물론 파르미의 창의에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된 이상 이후 개발은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개발팀과 우리는 발을 맞추며 끝까지 함께 노력했습니다.
사이토:
Fellow Traveller는 2019년부터 Steam 상에서 LudoNarraCon 이라는, 내러티브중심 인디 작품과 그 제작자들을 모은 온라인 컨벤션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매우 활기가 넘치고 훌륭한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Indie Live Expo 라는 온라인 이벤트의 론칭에 관여한 경험이 있어,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크리스:
루도나라콘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작은 퍼블리셔도 의미 있는 이벤트를 세우고 지속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루도나라콘 개최의 계기는 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리브랜딩으로 방침을 전환한 뒤, 우리는 2016년~18년에 걸쳐 많은 게임 이벤트에 출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게임쇼에서 내러티브 게임을 알리는 것’의 어려움을 절감했죠.
시끄러운 게임쇼 플로어에서 컨트롤러를 건네받고 “자, 이제 10분 동안 몰입하세요!”라고 해도, 집중하기 어렵지요. 특히 내러티브 게임은 매력을 이해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장르입니다. 데모를 해본 사람이 미묘한 표정으로 떠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면서 속으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디벨로퍼들은 이벤트 참가를 기대했고, 게임쇼가 인디에게 최대의 PR 무대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출전은 유지하면서도 대체할 만한 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Steam의 전면 협력 아래 매년 봄에 개최되는 LudoNarraCon)
크리스:
전환점은 2018년 멜버른 게임 위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Valve 직원이 갓 완성된 Steam 영상 스트리밍 기술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현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습니다. “Steam에서 스트리밍? 그래서? 뭘 하라는 거지?” 마치 완전히 미지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분위기였죠. 하지만 저는 그 기술에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게임 데모나 컨퍼런스 강연을 Steam에서도 흘릴 수 있다면⋯⋯ 즉, 게임쇼를 통째로 Steam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즉시 우리 마케팅 책임자와 구상을 다듬어 Valve에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재미있어 하며, 툴과 기술을 제공하고 이벤트 홍보에도 협력해주었습니다.
첫 개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개발자들을 설득해 온라인용 체험판을 공개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데모 공개가 인디에서 흔해졌지만, 당시엔 매우 이례적이었거든요.
모든 게 처음이라 정신없이 바빴지만, 결과적으로 첫 회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참가자 반응도 좋아서, 앞으로 매년 열기로 했습니다.
시작한 타이밍도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이듬해 2020년에 2회를 열었을 때는 마침 COVID-19 팬데믹으로 봉쇄되던 시기였으니까요.
1회 때는 “온라인 페스야말로 유일한 답이다”라는 수사로 사람들을 설득했는데, 그게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해를 경계로, 사람들의 온라인 페스에 대한 의식이 극적으로 바뀌었지요.

(개발자 패널 세션. 과거 세션은 모두 YouTube에 아카이브되어 있다)
사이토:
루도나라콘은 주최가 FT이긴 하지만, 공식선정작의 타이틀이나 패널 면면은 FT와 직접 계약하지 않은 디벨로퍼, 퍼블리셔, 저널리스트도 많습니다. 매우 다양하더군요.
크리스:
우리는 작은 회사라 할 수 있는 게 한정돼 있습니다. 전 세계를 구원한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손이 닿는 범위에서 도울 수 있는 게임과 디벨로퍼를 찾아내 지원하고 싶습니다.
루도나라콘도 그런 사명감에서 하는 겁니다. 직접 관여하지 않은 디벨로퍼들에게도 플랫폼을 제공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에 도전하는 게임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겁니다.
바람이 있다면, 루도나라콘 말고도 다른 디벨로퍼들에게 의미 있는 플랫폼을 연 1회 이상 제공할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사이토:
루도나라콘 같은 대안적 플랫폼을 만드는 시도는, 커뮤니티뿐 아니라 상업적 측면에서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최근 1~2년 사이에 인터넷 알고리즘이 크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SNS의 알고리즘이 바뀌면서, SNS 확산을 강점으로 삼아온 인디의 광고 전략은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2019년 인터뷰에서, 크리스 씨는 “3만 명 규모의 팬덤이 있으면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만 명 중 절반이 신작을 사면 브랜드가 지속된다고요. 이런 인터넷 지각 변동을 거친 지금도 그 지침은 변하지 않았습니까?
크리스:
우리 입장에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 실현의 열쇠는 예산입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금액은 보통 25만 달러 정도까지이고, 현재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그 범위에서 진행됩니다. 창업 초기에 개발 후반 단계에 투자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마저도 크게 늘어난 셈이지만, 이 이상 한도를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판돈 금액이 커질수록 실패 시 위험도 커지니까요. 위험은 가능한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Treasure Hunters Fan Club 이라는 공동 투자 펀드를 세워, 퍼블리싱 하는 작품에 대한 투자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인생 책이 있습니다.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 경제학』입니다. 20년 전 책인데, 출간 당시 읽고 인디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을 영감을 얻었습니다.

크리스:
틈새 콘텐츠를 다양하게 갖춰 장기적으로 확실한 수익을 낸다⋯⋯. 저에게 롱테일 시장 개념은, 대기업이 돈 들인 신작만 밀어붙이는 쇼트헤드 시장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FT의 전략 골격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도 Steam은 롱테일을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Steam도 낙원은 아닙니다. 현재 스팀 시장의 문제는 주로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노이즈 문제입니다.
2015년 『Hacknet』을 출시할 당시 Steam 신작은 연간 1500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간 1만 개에 달합니다. 그런데 양이 늘어난 만큼 질 좋은 게임도 비례해 늘었느냐? 그렇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앤더슨은 저서에서 시그널(고가치·고수요 콘텐츠)과 노이즈(무가치·저수요 콘텐츠)를 이야기합니다. 게임 수가 늘수록 시그널 대비 노이즈의 비율은 높아집니다. 즉, 게임이 늘어날수록 전체 출시 수 대비 질 높은 게임의 비율은 원칙적으로 줄어드는 겁니다.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거죠.
둘째는, 오래된 명작이 지나치게 오래 팔리며, 때로는 롱테일의 범주를 넘어 과도하게 팔리는 문제입니다. 『Hacknet』는 발매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연매출 톱5~10 안에 듭니다. 경영엔 도움이 되지만, 업계 전체적으로 보면 구작이 신작 자리를 내주지 않는 건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Hacknet』는 여전히 Steam의 Fellow Traveller 큐레이터 페이지의 “매출 상위”칸에 계속 자리 잡고 있다)
셋째는, 조금 전 언급한 인디 게임의 새로움과 신선함 문제입니다.
게임이 늘어날수록 소비 사이클도 빨라져 신선함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Vampire Survivors』가 히트했을 때를 보세요. 이후 반년 동안 시장은 옥석이 뒤섞인 뱀서 팔로워들로 넘쳐났고, 모두가 뱀서라이크에 지쳐 버렸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10년 전 로컬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도 일어났죠.
어마어마한 속도로 시장을 소비해 버리다 보니, 그 장르에서 정말로 신선하고 질 높은 아이디어를 지닌 신작이 나오기 어려워졌습니다.
시장의 공기를 순환시켜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은 플랫폼의 과제일 겁니다. Steam은 그 점에서 아직 비교적 잘하고 있는 편이지만요.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키며 하나의 장르가 된 『Vampire Survivors』. ‘뱀서라이크’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스팀 큐레이터 「Vampire Survivors Like Games」에 의하면, 현재 스팀에 등록된 뱀서라이크 게임은 300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사이토:
저는 요즘 Steam에서 롱테일이 과연 기능하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고전 명작이든 아니든, 팔릴 건 팔리고, 안 팔릴 건 아무리 해도 안 팔립니다. 이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죠.
SNS 확산력 저하도 겹쳐, 우리 같은 소규모 퍼블리셔에 불리한 생태계가형성되고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는 대규모 광고비를 쓸 수 있는 대형사만 살아남는 게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Xbox Game Pass: 신작 AAA 타이틀부터 인디 게임까지 폭넓게 제공하는 정액제 게임 구독 서비스)
사이토: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Apple Arcade나 Microsoft Game Pass 같은 구독 서비스와 계약을 맺고 있잖습니까. 저건 경영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됩니다. 개발자에게도 퍼블리셔에게도 최소한의 금전적 보장이 되어 ‘실패’가 사라지죠.
하지만 빅테크 플랫폼이 인디를 다 빨아들이면, 결국 우리에게도 독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크리스:
사이토 님의 우려 이해합니다. 모든 게임이 대기업 구독 서비스에서만 공급되는 디스토피아에서는 『Undertale』이나 『Vampire Survivors』 같은 깜짝 히트가 나오지 못할 겁니다. 매체로서의 생명력, 놀라움을 낳는 자리가 사라져버리니까요.
누구도 예측 못한 타이밍에, 상상조차 못한 게임이 등장해 세계를 매혹한다 ― 그 순간을 모두가 고대하고 있으니까요.
사이토:
세계 시장을 겨냥해 내러티브 게임을 전개할 때 가장 큰 장벽은 언어입니다. 다른 장르와 달리 텍스트 양이 엄청나서, 번역에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잘못하면 번역 비용이 개발비를 웃돌기도 하죠.
크리스:
로컬라이즈는 우리에게도 과제입니다. FT 게임의 평균 텍스트는 약 10만 단어, 많게는 50만 단어에 이릅니다. 말씀하신 대로 로컬라이징에는 손도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론칭 시점에는 영어만 내놓고 추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1차 타깃은 북미 시장입니다. 매출 비율로 말하면, 북미가 약 55~60%, 유럽이 25~30%, 아시아가 15% 정도입니다. 그래서 먼저 영어권에서 팔리고 나서 로컬라이즈를 시작합니다.
고객층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언어로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러시아어, 브라질 포르투갈어, 그리고 일본어입니다.
내러티브 게임 팬은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아, 영어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로컬라이즈 기대가 낮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다만 유럽에 비해 아시아 사람들에게 영어의 벽이 높은 건 저희도 압니다. 중국어권이나 일본어권에서 진지하게 시장을 개척하려면 현지화는 필수라는 인식입니다.

(『CITIZEN SLEEPER 2』의 텍스트 분량은 25만 단어를 넘는다. 참고로 소설 한 권은 약 10만 단어이다. 『1』의 일본어판은 정식 출시 후 2년 뒤에야 구현되었다.)
크리스:
또 일본 시장은 특히 Switch 점유율이 높습니다. Switch판을 낸다면 일본어 로컬라이즈 없이란 있을 수 없죠.
따라서 로컬라이징을 하나만 우선한다면 일본어입니다. 실제로 『Afterlove EP』는 영어, 개발팀의 모국어인 인도네시아어에 더해, 일본어를 론칭부터 지원했습니다. 아트나 게임의 스타일적으로도 이 타이틀의 성공의 열쇠는 일본에 있다고 봤기에, 일본어판을 꼭 동시 출시하고 싶었거든요. 개발 도중 단어 수가 6.5만에서 12만으로 불어나 로컬라이징 비용도 두 배, 총계 약 2만 달러까지 치솟고 말았지만요…….
내러티브 게임 로컬라이징에서 간과되기 쉬운 문제는, 게임의 스크립트가 업데이트마다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론칭 시점부터 번역해버리면, 출시 후 텍스트를 수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텍스트가 완성되고, 버그나 기타 문제를 제거한 뒤에 로컬라이징하는 편이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Jini:
FT의 주 고객층이 영어권인 건 이해합니다.하지만 Steam 통계를 보면 최근 23년간 간체 중국어가 30~40%까지 올라, 영어를 넘어설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Steam에 게임을 내는 이상,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 아닌가요?
크리스:
확실히 중국은 매력적이고 중요한 시장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로컬라이징 비용 장벽이 있습니다. 게다가 FT 게임은 정치나 LGBTQ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중국에서 인기가 높지 않습니다. 매출 비율로 보면 2~3%에 불과합니다.
물론 저희는 중국의 오디언스를 소중히 여기고, 저희 게임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다른 퍼블리셔만큼의 혜택을 누리긴 어렵습니다.
중국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할 겁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중산층이 확대되고 있는 국가들도 몇 년 안에 뒤따를 겁니다. 제가 흥미로운 건, 그러한 큰 시장이 형성되었을 때 그 지역에서 나오는 게임들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 로컬 작품이 서양에서도 히트를 치며 영향력을 갖게 되면, 게임 전반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겠죠. 그런 개인적 전망과 퍼블리셔로서의 전략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sunset visitor[斜陽過客]가 개발한 『1000xResist』. 개발 국가는 캐나다지만, 이야기 배경으로 중국의 한 정치 문제를 다룬다)
Jini:
코로나 이후 북미·유럽 인디 시장은 과당 경쟁으로 성장 한계에 온 듯합니다. FT도 다른 지역 시장 진출을 적극 고려하지는 않나요?
크리스:
북미·유럽 시장이 한계에 온 건 맞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규모 인디 퍼블리셔입니다. 10만 장 팔리면 대히트입니다. 그 관점에서는 북미·유럽 시장은 아직 충분합니다.
세상은 돌고 시대는 바뀝니다. 업계 전체로는 새 플레이어·새 시장 개척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인디는 성장 제일주의의 행보를 반드시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게 만들고 작게 판다 ― 그것이 FT의 생존 전략입니다. 물론 다른 장르, 다른 퍼블리셔는 다른 방식을 필요로 하겠죠.
사이토:
크리스 님 보시기에, 고유한 “사운드”를 내는 신흥 퍼블리셔가 있나요?
크리스:
『Manor Lords』 등으로 시티빌더/전략 장르 전문 퍼블리셔로 각광받는 Hooded Horse를 들 수 있겠네요. CEO 팀과는 개인적으로도 친구인데, 그는 매우 용감한 인물이에요.
왜냐하면 2020년 전후에는, 전략 게임 전문 인디 퍼블리셔를 지향하는 게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로 여겨지지 않았거든요. 전략 게임은 팬베이스가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파이를 Paradox 같은 기존 대형사가 꽉 쥐고 있습니다. 실제로 Modern Wolf라는 회사가 이 노선을 시도하다 크게 데인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Hooded Horse는 자기 영역을 꿰뚫고 있었고, 노련한 자금 조달로 시대를 열었습니다. Paradox가 놓친 틈새에 정확히 들어갔죠. 그 후각에는 감탄했습니다.

사이토:
이야, 퍼블리셔 전국시대 같군요. 조금이라도 생존할 환경을 찾아 퍼블리셔끼리 각축을 벌이는…….
크리스:
호주에서는 퍼블리셔들이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자금을 보태는 등 협력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보기엔 일본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다소 적은 듯하지만요.
사이토: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퍼블리셔 협력의 고리를 넓히고, 그 고리를 세계로도 뻗어가고 싶습니다.
크리스:
우정이란 밤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별들과도 같은 것이고, 친구란 그 하늘 아래에서 함께 춤출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업계 전반이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게임, 새로운 퍼블리셔, 새로운 마케터가 있습니다. 다시 즐겁게 춤출 수 있는 미래도 반드시 올 겁니다.
사이토:
마지막으로, Fellow Traveller의 앞으로의 전망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크리스:
2026년까지 11개의 대기작이 있습니다. 그 11개에 집중할 겁니다. 그 이후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오니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저희는 지금껏 계약해 본 적 없는 나라들의 게임과 계약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감사합니다.

Fellow Traveller는 인디 업계의 큰 수수께끼 중 하나다. 기적이라 해도 좋다. 높은 예술성과 참신함을 가진 타이틀을 오랜 세월 내놓으면서 살아남고 있으니—이 게임 업계의 대량 사망 시대에도 말이다..
80년대 비디오 게임 여명기와 90년대 영국 인디 음악에 뿌리를 둔 라이트 씨는 “새로움”에 대한 충동을 숨기지 않는다. 골수 인디 키드다. 동시에 노련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예술적이지만 상업적으론 팔릴 가능성 없는 게임을 만나면?”이라는 질문에 그는 “눈물을 머금고 철수한다”고 즉답했다.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러하듯 게임 비즈니스는 흥행이다. 동경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퍼블리싱 부문과 에이전시 부문의 두 기둥의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고, 불필요한 위험을 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투자처를 가려낸다.
그렇다고 그는 거기서 냉소에 빠져들지 않는다. 공동 투자 펀드를 세우고, 루도나라콘을 열어 내러티브 게임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넓히려 한다. 그렇다. “내러티브 게임의 가능성 확장”이라는 공식 페이지의 미사여구는 아름답기만 한 공염불이 아니다.
호주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송라인(Songline) 이라 불리는 그것은, 예전에 원주민들이 긴 여행을 하며 땅곳곳에서 보고 만난 모든 것을 노래로 읊어 다음 세대에 전해 오던—노래와 이야기로 빚어진 길이다.
20세기 괴짜 영국인 브루스 채트윈은 그런 송라인에 매력에 사로잡혀 호주를 걸어다녔고, 그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부르고,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낳는다. 길을 걷는 이의 발자취는 머잖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 간다. Fellow Traveller는 다음엔 누구와 여행을 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