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0

“Cult of the Lamb” 줄리언 윌턴 ― ‘친구’를 위해 게임을 만든다는 것

머리말

처음 “Cult of the Lamb”(이하 “CotL”)을 했을 때, 무척 “호주적인” 게임이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CotL”에 캥거루가 나오는 건 아니다. 코알라도, 오페라하우스도, 울루루도 없다. 상징 동물인 양은 나오지만, 그 양이 컬트를 만들고 신자들을 모아 제물로 바치며, 심지어 “똥(poop)”도 치워 주는 장난기로 가득한 게임을 두고 “호주답다”고 말했다간, 정작 현지 사람들이 뭐라 하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CotL”은 호주스러운 게임이다. 막 나가는 유머, 사랑스러운 비주얼, 다채로운 게임플레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랑한 캐릭터들…… 한마디로, 친근하다. 바로 그 친근함이야말로 정말로 호주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INT 취재팀은 호주 최대의 게임 이벤트 PAX Aus에 참가해, 현지 게임 팬들과 직접 만나 보았다. 도쿄 게임 쇼처럼 대기업이 대형 부스를 차린 건 아니었지만, 개성 넘치는 인디 부스들이 줄지어 섰고, 그곳을 찾은 팬들은 모두 즐겁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 보며 쾌활하고 친근했다. 그런 현장의 한가운데서, 특히 ‘신자’를 모으고 있던 곳이 바로 “CotL” 부스였다.

“CotL”의 팬덤은 마치 게임 본편의 컬트 마을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밝고 긍정적인 일체감을 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궁금해졌다. 이렇게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따뜻한 팬들에 둘러싸인 “CotL”은, 어떤 사람이 만들었을까? 그렇게 해서 우리 INT 취재팀은 “CotL”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Massive Monster의 공동 대표인 줄리언 윌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획·질문·편집/Jini
듣는 이/사이토 다이치
글/치바 슈
사진/이요다 아키히코

악동이 게임을 만들기까지

사이토:
“Cult of the Lamb” 클리어했습니다. 이건요, 업적이에요.
저 개인이 클리어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 같은 사람도 엔딩까지 가게 만든 여러분 쪽의 업적. 액션 게임을 잘 못하는 저도 엔딩에 도달했으니까요. 성취감까지 포함해서요.

윌턴:
클리어한 난이도는?

사이토:
노멀이었나? 디폴트(기본 설정) 그거.

윌턴:
그럼, 넌 나랑 이미 친구다.

사이토:
여기서 처음 마주본 지 2분밖에 안 지났는데요???

윌턴:
노멀 모드로 “Cult of the Lamb”을 좋아하게 됐다는 건,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뜻이거든.

사이토:
?

윌턴:
왜냐하면 나도 액션 게임을 잘 못해. 그래서 노멀 난이도는 내가 깰 수 있는 선으로 맞췄어. 개발 현장에선 ‘줄리언 모드’라고 불렀지. 그러니까 “CotL”의 노멀 모드는 곧 나야.
그리고 난 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해.
자, 우리 벌써 친구지? 악수!

사이토:
납득! 악수! 고마워, 줄리언!
처음부터 남 같진 않았어. 줄리언은 플래시 게임 출신이잖아. 예전엔 나도 플래시·무료 게임에 푹 빠져 있었거든. 도완고라는 회사에 들어간 뒤엔 ‘니코니코 자작 게임 페스’라는 무료 게임 콘테스트에도 관여했어.

윌턴:
만드는 쪽도 즐기는 쪽도 젊은 아마추어들이던 그 분위기, 알아. 나도 어릴 땐 플레이어로서 무료 게임만 주구장창 했거든.
“RuneScape” 알아? 2001년 무렵 시작해서 지금도 이어지는 대표적인 MMORPG. 초등학생 땐 그게 제일 미쳐 있었지.
“RuneScape”에는 유료 멤버십이 있었는데, 월 12달러였나 그쯤이었을 거야. 당연히 갖고 싶지. 근데 내 용돈으론 도저히 못 사.
끙끙대던 어느 날, 24캔 묶음 콜라가 12달러에 팔리는 걸 봤어. 학교 매점에선 한 캔이 1달러 50센트 정도였고. 그래서 ‘공략법’을 떠올렸지. 묶음으로 산 콜라를 낱개로 나눠서 학교 친구들에게 한 캔 1달러에 팔아치웠어. 그랬더니, 봐. 남는 돈이……

사이토:
12달러. 멤버십을 살 수 있네.

윌턴:
꿀장사였지. 그런데 부분유료 온라인 게임은 별별 수로 과금을 유도하잖아. 멤버십 다음엔 유료 아이템이 또 갖고 싶어졌어. 하지만 콜라 되팔기는 한계가 있지. 그래서 이번엔 게임 안에서 벌이를 시작했어.

(“RuneScape”는 시작한 지 사반세기가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서비스 중. 이미지는 초기의 로우폴리 느낌을 재현한 “Old School” 버전)

사이토:
아이템 되팔기 같은 거였어?

윌턴:
그걸로 무슨 돈이 되겠어. MMORPG에서 돈 벌려면 사기지. 난 게임 내 주사위 기능을 이용한 도박 사기를 했어. 남한테 주사위 내기를 제안하고, 처음엔 정상적으로 딜러를 맡아. 판이 달아오르고 손님이 큰돈을 맡기는 순간에…… 슉! 로그아웃. 먹튀야.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도 흔하던 수법이지.
그렇게 번 게임 내 화폐로 갖고 싶던 아이템을 샀어. 기분 최고였지. 뭐, 사기와는 직접 무관한 혐의로 운영진에게 밴(Ban)을 당하고 끝났지만.

사이토:
하하하. 제대로 한탕꾼인데. 그럼 벤도 당하지. 여러 게임 크리에이터를 인터뷰해 봤지만, 도박판 딜러나 사기꾼을 했다는 사람은 처음이네.

윌턴:
현실에선 모범생이었다고! ……아니, 그랬나?
고등학교 올라가선 컴퓨터 활용법을 미친 듯이 구글링해서 온갖 나쁜 편법을 배웠지. 남에게 바이러스를 보내고, 학교 네트워크를 해킹해서 교내 컴퓨터 연결을 끊고…… 뭐, 그 정도. 완전 착한 애.

사이토:
전혀 착한 애 아니잖아!

윌턴:
수업 중에 “어? 컴퓨터가 안 움직이는데?” 하고 짜증내는 선생님 보는 게 재밌었거든…… 물론 지금은 안 해.
근데 그런 개구쟁이 해커 기질이 게임 만들기로 이어진 거지.
어느 날, 게임 소스 파일의 파라미터를 만지면 게임 내용이 바뀐다는 걸 깨달았어. 비밀을 들여다본 기분이었지. 내 마음대로 게임이 바뀌는 거야. 그렇다면 직접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울 게 없겠네?
그래서 들뜬 친구들이랑 개발에 뛰어들었어. 그게 첫 게임 제작이야.

사이토:
어떤 게임을 만들었어?

윌턴:
애초에 완성하지도 못했지.
친구들이 금방 질려서 팀을 나가 버렸거든. 흔한 얘기야. 그래도 난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의 길로 가기로 했어.
처음엔 C++을 배우려 했는데, 그 언어는 전혀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더라고. 어린 나로선 도무지 상대가 안 됐지.
금세 좌절하던 참에 플래시를 알게 됐어. 당시 플래시 작품들의 아트와 애니메이션이 내 감성에 딱 맞았거든. 그래서 온라인으로 멤버를 모아 플래시 게임 개발에 나섰지.
역할 분담은 내가 아트·애니메이션을, 다른 사람들은 프로그래밍을. 대략 그런 느낌.

사이토:
아직 10대였지? 그때부터 창작의 꿈으로 불타고 있었던 거네.

윌턴:
아니, 용돈이 필요했어.
어머니가 용돈을 잘 안 주시는 편이었고, 그래도 애 나름대로 친구들 사귀고 갖고 싶은 것도 많잖아? 콜라를 쪼개 팔아선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그래서 플래시 게임이지. 당시 인터넷에선 인기 플래시 작품이면 개별 스폰서 광고가 붙거나, Kongregate나 Newgrounds 같은 유명 포털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거든.
내겐 플래시 게임 제작이 딱 좋은 용돈벌이로 보였어.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 게임을 예술적으로 ‘작품’이라 부르긴 좀 어색해.

사이토:
그래도 무료 게임 제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건 좋네.

(플래시 시절 작품 중 하나 ‘Angry Bees’. 그때부터 Massive Monster의 팝한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윌턴:
한 게임으로 우린 1,600 호주 달러(당시 환율로 12만~14만 엔 상당)를 벌었어. 열여덟 살인 우리한텐 눈이 튀어나올 돈이지.
한편, 플래시 게임 제작은 현금 말고도 내게 ‘재산’을 남겨 줬어. 훗날 Massive Monster 공동 창립자가 되는 제이 암스트롱과 제임스 비어먼 말이야.

사이토:
둘 다 영국인이잖아. 어떻게 알게 됐어?

윌턴:
먼저 온라인에서 제이와 알고 지내다가, 같이 “Super Adventure Pals”라는 게임을 만들었어.

(“Super Adventure Pals”는 나중에 “The Adventure Pals”로 리메이크되었다)

그 “Pals”를 제임스가 마음에 들어 해서, 맥주를 들고 제이를 찾아갔지. 그 자리에서 제이가 제임스를 내게 소개했고, 우리는 금세 절친이 됐어. 그런 이야기야.

사이토:
그나저나 “Super Meat Boy”의 에드먼드 맥밀런처럼 플래시 출신 인디 제작자들이 몇 있지. 일본에도 “스시다(寿司打)” 같은 명작 플래시 게임이 여럿 있지만, 너희만큼 크게 성공한 사례는 안 나왔고.

윌턴: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봐도, 우린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해. 내 플래시 동료들도 지금은 대부분 게임을 그만뒀거든. 간신히 이어 가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모바일이나 HTML5로 넘어갔지. 콘솔이나 PC에서 본격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잘 못 봐. 분야도 꽤 다르고.

사이토:
지금도 줄리언 안에서 살아 있는, ‘플래시에서 얻은 배움’이 있어?

윌턴:
스피드감. 플래시 게임은 수정이나 조정을 넣으면 바로바로 반영돼. 그래서 유저 반응을 보면서 머리와 손을 계속 굴려가며 시행착오를 돌릴 수 있지. 출시와 업데이트의 사이클도 거기서 배웠고.
아이디어를 쏟아내듯 빠르게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도 플래시의 강점이었어. 아이디어의 물량과 속도가 혁신적인 메커닉으로 이어진다. ‘한 가지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내 신조도 거기서 나왔고.

동경하던 퍼블리셔와 연결되는 방법

사이토:
왜 플래시 게임에서 일회 결제형(패키지) 인디 게임으로 옮겼어?

윌턴:
간단히 말하면, 플래시 업계가 망했기 때문이야.
가장 큰 원인은 모바일 게임의 부상이었어. 2010년대 중반엔 다들 PC 브라우저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했지. 그 탓에 투자와 시장도 모바일로 흘러가 버렸고.
플래시에 치명적이었던 건 아이폰에서 배제된 일이야. 그걸로 시장이 닫혀 버렸고, 플래시의 미래는 끊겼지.
이제 플래시로 게임 만드는 건 무리야. 그렇다면 콘솔이나 PC로 전환해야 해. 하지만 막 떠오른 우리 같은 팀에겐 PC·콘솔에 바로 뛰어들 여력이 없었지. 모바일 게임 개발이나 외주를 하면서, PC 게임을 만들 자금을 모아야 했어.

사이토:
힘들었겠다. 나도 회사가 무너질 뻔하던 때 알바를 해 본 적이 있어서, 그 고생이 뭔지 알아. 그래도 플래시 게임 개발자로 히트를 낸 경력이 리셋되는 건 아프지 않았어?

윌턴:
오히려 플래시 시절의 이력이 PC·콘솔 진출의 디딤돌이 돼 줬어.
원래 플래시 포털을 운영하던 Armor Games가 PC 퍼블리싱 사업을 시작했거든. 플래시 업계가 무너지면 그들도 곤란한 건 같지. 플래시 시절의 인맥과 노하우를 살려 생존을 꾀하려 했던 거야.
Armor Games는 “Chibi Knight”나 “GemCraft” 같은 유명 플래시 작품을 PC로 리메이크하려 했고, 그 흐름에서 “Super Adventure Pals”로 성과를 냈던 우리에게도 연락이 왔어. Massive Monster를 세우기 조금 전쯤이었지.
그렇게 해서 2018년에 완성된 게, Massive Monster의 데뷔작 “The Adventure Pals”. 총매출은 약 100만 호주 달러. 무명의 신인 데뷔작으로선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었어.
이듬해엔 두 번째 작품 “Never Give Up”을 냈고. 그 무렵엔 Armor Games도 거의 게임 퍼블리셔로 전환해 있었다고 기억해.

(현재는 플래시에서 HTML5 게임 포털로 이행하면서, Steam 등에서 퍼블리싱 사업을 하고 있는 Armor Games)

사이토:
Armor Games는, 내리막길이던 플래시에서 함께 탈출한 전우였던 셈이네. 그런데 왜 세 번째 작품 “Cult of the Lamb”부터 퍼블리셔를 Devolver Digital로 갈아탔어?

윌턴:
“왜”라니…… 진심이야? Devolver잖아!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디 게임 세계에서 Devolver는 최고 중의 최고, 개발자들이 동경하는 브랜드야. 거기서 제안이 오면…… “노”라고 할 수 없지.

게다가 Armor Games는 돈 문제에서 꽤 엄격했어. 투자된 제작비도 새 발의 피였고, 거기에 리쿱 계약이니 뭐니가 붙었지. “Never Give Up”도 “The Adventure Pals”도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조건이었다고 생각해.
그런 환경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우리도 그들도 업계의 ‘루키’였기 때문일 거야. 무엇이 좋은 조건이고,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서로 잘 몰랐지. 지금은 그들도 성숙해져서 히트작을 여럿 거느린 훌륭한 퍼블리셔가 됐어. 조건도 개선됐을 테고. 뭐, 모두가 어른이 됐다는 이야기야.

사이토:
서로 젊음 덕분의 돌진력이었구나. Devolver와는 어떻게 접점을 만들었어?

윌턴:
조금 정상적이지 않은 접근을 했지.
2018년에 “The Adventure Pals”의 공로가 인정돼, 영국에 살던 제이가 영국 아카데미(BAFTA) ‘Breakthrough Brit’라는 상을 받았어. 각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유망한 젊은 영국인을 기리는 상이야. 거기에 마침 Devolver 사람도 와 있었고, 제이가 그에게 다가가서……

사이토:
의기투합해서 “우리랑 게임 내지 않을래?” 하고 초대받은 거야?

윌턴:
이름을 물어봤어.

사이토:
이름. 어, 이름만?

윌턴:
그래. 그리고 그 사람 이름으로 Devolver의 사내 메일 주소를 추측해서, 모험 삼아 기획서와 프로토타입을 첨부해 제안 메일을 보냈지. 그랬더니…… 전달돼 버린 거야!

사이토:
전달돼 버렸구나.

윌턴:
그 뒤에 메일을 읽은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제작비는 얼마가 필요해?” 하고 묻더라고. 엄청 긴장됐지. 그래도 Devolver라고 기죽을 우리도 아니야. 최대한 대담하게, 30만 달러를 요구했어. 물론 호주 달러가 아니라 미 달러로. Armor Games에게 받았던 투자액의 몇 배였지.

그랬더니 그가 말하더군. “노. 그건 안 돼.”

“30만 달러 같은 푼돈으론 턱없이 모자라잖아. 더 줄게.”

사이토:
너무 멋지다. 같은 퍼블리셔로서,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대사네.

윌턴:
물론 Devolver 말고도 여기저기 들이밀었어. 하지만 당시의 우린 정체불명의 삼인조였지. 어디서도 시원한 답을 받지 못했어. 잘해 봐야 ‘재밌긴 한데, 더 적은 예산으로 못 해?’ 정도였지. 그래서 Devolver의 오퍼에 신이 났어. 물론 제작비 외 조건도 훌륭했고.

하지만 두터운 대우는 곧 압박이기도 했지. 우리는 작품의 퀄리티뿐 아니라 비즈니스 면에서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거든.
첫 피치 때 “출시 후 반년 동안 대형 업데이트를 두 번 하겠다”고 선언했어. 그렇게 하면 론칭이 빗나가더라도 업데이트 때마다 신규 유저를 넓힐 기회가 생기고, 제작비 회수도 더 효율적일 거라 본 거야.
Devolver는 그 제안에 만족한 듯했어. “너희는 돈 버는 법을 아네”라고. 동시에 “좋은 마케팅 방식이긴 한데,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과 자금이 훨씬 든다”고도 충고했지. 실제로 그들이 옳았어. 프로더라.
아무튼, 투자금에서 역산한 제작 일정표를 짜고, 양측이 함께 마일스톤을 설정해 갔어.

(“Cult of the Lamb” 프로토타입)

사이토:
디벨로퍼와 퍼블리셔의 호흡이 맞는 건 훌륭하지. 그래도 돈을 대는 퍼블리셔는 간섭하지 않아? Devolver는 인디 퍼블리셔 중에서도 가장 큰 축이고, 품질 관리도 엄격하단 이미지가 있는데.

윌턴:
그게 말이지, 거의 없었어. 우리도 Devolver에 대해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의외였지.
적어도 우리에 대해서는 방임에 가깝게 놔뒀어. 물론 우리가 요청하면 조언은 해 줬고. 하지만 개발에 대해 먼저 끼어드는 장면은 없었지. 저쪽에서 제안한 건 론칭 시점의 마케팅 관련 이야기 정도였나. 아, 방송 기능의 Twitch 연동도 있고.

사이토:
좋다. 훌륭하다. 정말 아름답다. 이런 퍼블리셔와 디벨로퍼의 하모니가 인디 게임의……

윌턴:
아냐, 그때는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어. 적어도 겉보기엔 말이야.
솔직히, 출시 9개월 전쯤까지만 해도 “Cult of the Lamb”은 똥 같은 물건이었어. 형편없었지.
현장의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개발력의 문제가 아니야. “CotL”은 시스템 기반 게임이거든. 이런 타입은 비슷한 게임플레이 루프를 통해 시스템과 요소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다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듯 터져.
(쥔 손을 펴 보이며) 펑, 이렇게.

사이토:
(따라 하며) 재미가…… 펑, 하고. (웃음)

윌턴:
차라리 우리가 “반드시 재미있어질 거야!”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봐, 나 꽤 모범생이잖아. 겁이 많았지.
더구나 Devolver도 속이 타들어갔을 거야. 발매일은 코앞인데, 게임은 똥.
다이치, 퍼블리셔 입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하겠어?

사이토:
농담하지 마.

윌턴:
나도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런데 Devolver의 반응은 정반대였지. 웃으며 지켜봐 줬어. 그 무언의 압박이 무서워서, 우리는 사력을 다해 구현을 밀어붙였지.
그리고 어느 날, 평소처럼 테스트 플레이를 시작했어. 아마 수천 번째였을 거야. 보통은 점심 무렵 시작해서, 질려서 수십 분에서 두어 시간 만에 그만두곤 했거든.
그런데 그땐 멈출 타이밍이 안 보였어. 어느새 계속 플레이하다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지. 이거다, 싶었어.
‘폭발’이 일어난 거야.

사이토:
펑, 하고 말이지. 그 폭발은 Devolver의 인내심의 승리이기도 하네.
당신은 “Devolver는 디벨로퍼가 동경하는 대상”이라고 했지만, 우리 퍼블리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나 자신, 라이벌이자 팬이거든.
다만 너무 앞서가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친구들인 열성 팬들과 “혹시 ‘퍼블리셔 Devolver’로서의 레이블 색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이야기할 때가 있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윌턴:
난 외부 개발자라 개인적 견해일 뿐이지만……
예전에 Devolver의 CEO와 얘기했을 때, “Devolver 게임다움”의 핵심은 “팔에 털이 곤두설 만큼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우리가 “Hotline Miami”나 “Inscryption”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동 말이지.
실제로 Devolver에는 개성 있고 짜릿한 작품이나 팀(우리 말야!)을 탁월하게 골라내는 감각을 지닌 멤버가 많아.
다만, 감동은 수치화할 수 없고, 숫자로 보이지 않는 건 투자자에게 와 닿지 않아. 투자자들은 안 팔리면 곧바로 “왜 안 팔려? 비즈니스적으로 분석해서 팔릴 걸 만들어”라고 요구해. 어느 정도는 타당한 의견이기도 하고.
지금 Devolver는 그런 상업성에 대한 압력과, 그들의 컬러인 쿨하고 아티스틱한 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단계가 아닐까 해.

사이토:
어쩌면 그게 인디 게임 업계 전체의 성숙을 상징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2024년 Steam의 Devolver Digital 퍼블리셔 세일에서 쓰인 일러스트. “Enter the Gungeon”, “Hotline Miami” 같은 유명작과 나란히 “Cult of the Lamb”이 퍼블리싱 타이틀의‘얼굴’로 메인에 올랐다)(

”똥”같은 유머 속에 숨은 디자인의 비밀

사이토:
그런데 저, 똥을 좋아하거든요. 💩

윌턴:
그 고백은 좀 식겁하지만, 그래도 널 버리진 않을게. 친구니까.

사이토:
아, 그게 아니에요. 방금 건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 번역의 미스. 오해였습니다.
있잖아요, “Cult of the Lamb” 얘기요. 그거 유머가 엄청 강렬하잖아요?
예컨대 똥 드립. 신자들이 거점 여기저기에 야외 똥을 마구 싸대니까, 교주인 새끼양이 일일이 치워야 하죠. 신자 중엔 이상할 정도로 똥을 좋아하는 애도 있어서, 급기야 “다른 신자에게 똥 요리를 먹이고 싶다” 같은 소리도 해요.
줄리언은 좋아해요, 똥?

(다른 신도에게 똥을 먹이게 하는 퀘스트로, 거절하면 신앙도가 감소한다.)

사이토:
발 빼셨네.

윌턴:
하하, 미안. 그런데 애초에 팀 방침은 그렇게까지 저속한 농담을 넣을 생각은 아니었고, “Darkest Dungeon”처럼 어린이 출입 금지의 다크 판타지를 지향했거든. 다만 그러면 경쟁이 많으니, 내가 유머를 좀 섞어서 차별화하자고 제안했지.
그랬더니 프로그래밍 리드인 해리슨 기빈스(Harrison Gibbins)가 똥 개그에 꽂혀 버렸어. 똥 요리도 아마 그의 아이디어였을 거야.

내 취향을 말하자면, 야한·저속한 농담을 포함해 싼티 나는 웃음도 싫진 않아. 다만 ‘맥락 없는’ 유머는 좋지 않다고 봐. “CotL”에는 버섯을 먹으면 트립하는 개그가 있는데, 실제 컬트에서도 그런 행위가 있잖아. 그러니 필연성이 있고, 세계관 몰입에도 기여해. 반대로 뜬금포 유머 때문에 몰입이 깨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그런 점에서 똥 드립에도 맥락이 있어. 바로 “다마고치”지.

사이토:
갑자기 의외의 게임이 튀어나왔네.

윌턴:
“CotL” 게임 디자인의 기둥 중 하나가 ‘신자들’이야.
신자들에게 애착을 느끼게 하는 것이 곧 게임 자체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지지. 그럼 어떻게 사랑받게 만들까?
그래서 신자를 “다마고치” 같은 디지털 펫으로 본떠 보자는 생각을 했어.
“다마고치”에선 병간호부터 배설물 청소까지 생활 전반을 플레이어가 돌봐야 하잖아.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 수고를 통해 자연스레 다마고치들에게 정이 붙어. 아이를 돌보는 것과 비슷해.
그리고 “다마고치”의 높은 인지도도 중요했어. 그러니까 그 메커닉에 다들 이미 익숙한 거야. “똥을 방치하면 병이 퍼진다”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플레이어가 알아챈다는 뜻이지.

(“다마고치”)

사이토:
플래시 감성도 그렇지만, 그런 대목까지 포함해 90~2000년대의 공기를 잇고 있는 셈이네.

윌턴:
거기에 2010년대 전후의 문화도 크게 작용했지. 게임으론 “Castle Crashers”의 막 나가는 노선에 꽤 영향받았다고 생각해.
또 카툰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타임”, “그래비티 폴즈”, “오버 더 가든 월”처럼 키즈 채널에서 방영되던 작품들 말이야. 그 시기의 카툰은 막장스럽고 파괴적인 유머를 펼치면서도, 때때로 진지한 면모를 살짝 보여 주곤 했거든.
“The Adventure Pals” 때도 그런 2010년대 애니의 영향으로 떠오르는 대로 개그를 마구 집어넣었더니, 시장에선 아동용 게임으로 취급돼 버렸어. Steam의 메인 유저는 아무래도 20대 이상이라, 한 번 ‘아이들용’ 낙인이 찍히면 구매층이 크게 줄어들거든.
그래서 “CotL”에선 즐거운 테이스트를 유지하되, Steam 시장을 의식한 좀 더 성숙해 보이는 게임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썼지.

(마을에 들끓는 똥. 치우지 않으면 병이 만연한다)

사이토:
확실히 너무 어른스럽지도,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그 균형이 “CotL”의 미덕이야. 그건 당신의 ‘작가성’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윌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가성’은, 게임플레이 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간성이라고 봐. 즉, 우리를 아는 사람이 플레이하면 각자의 개성이 곳곳에서 보이는 게임. 그래서 유머를 포함해 우리 주변의 것,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채워 넣는 게 중요해.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작가성’을 한마디로 하면, 모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거야. 알기 쉽게, 팝하게 다듬어서 플레이어가 즐겁고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 그렇게 하면 우리의 개성과 접근성이 공존하는 게임이 되지.
그게 스튜디오를 세울 때 정한 Massive Monster의 컬러였어.

사이토:
“CotL”에 흩뿌려진 패러디도 그 연장선이겠네. 컬트 영화만 해도 레퍼런스가 잔뜩이던데.

윌턴:
맞아. “미드소마”, “서스페리아”,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우리가 좋아하는 컬트·오컬트 계열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가져왔지.

사이토:
흥미롭네. 당신이 언급한 영화들에선 컬트를 좋은 것으로 그리진 않잖아. 대개 컬트를 다룬 픽션은 그렇고. 그런데 당신네 게임에선 ‘재미있는 것’으로 묘사되잖아.

윌턴:
그야, 컬트 교주… 재미있어 보이잖아? 되고 싶지 않아?

사이토:
엄청 되고 싶다.

윌턴:
그치? 원래 프로토타입은 단순히 동료를 모집해 마을을 건설하는 게임이었어. 그런데 전작 “Never Give Up”의 상업적 실패도 있었고, 더 마케팅에 효과적인 훅이 필요했지.
그래서 떠올린 게 ‘컬트’라는 아이디어.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품고 있는 은밀한 소망이야. 이른바 플레이어 판타지. 그 욕망을 채우기에 딱 맞고 의외성까지 있는 포지션—그게 ‘컬트의 교주’였던 거지.

(‘컬트 교주가 되고 싶다’는 플레이어 판타지의 도식)

사이토:
교주가 귀여운 새끼양이라는 것도 훅이 세지. 그렇게 귀여운 얼굴로 점점 더 수위 높은 일을 해 나가니까.

윌턴:
양은 ‘순수’의 상징이잖아. 신자들도 동그란 눈으로 천진난만해 보이고. 그런데 막상 플레이해 보면 다들 조금씩 다크하고 살벌한 짓을 해.
그 갭에서 직관적인 의외성이 생기고, 놀람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어. 이런 놀람은 남에게 말하고 싶어지고,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모든 요소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면 여기까지 입소문을 크게 타지 못했을 거야. 컬트를 소재로 한 게임이 진지하고 어두운 건, 의외도 놀람도 아니니까.

사이토:
그리고 귀엽기만 했어도 히트하진 못했겠지. 그런 귀여운 새끼양을 통해 플레이어가 신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니까. 그 귀여운 가죽 덕에 별별 소행이 부드럽게 중화돼. 예컨대 제물 의식은, “에이 괜찮으니 한 번쯤 죽여 봐”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더라고.

윌턴:
그게 환청만은 아니야.
사실은 신자들 사이에 일부러 ‘얄미운 놈’을 끼워 넣는 메커닉을 심어 놨어. 어떤 플레이어든 “쟤는 제물로 바쳐버려” 하고 혐오를 돌릴 만한 신자가 늘 한 명쯤은 있게 말이야.

사이토:
그래도 신자를 죽이면 죄책감이 솟구치잖아.

윌턴:
희생될 신자가 살짝 미소 짓게 만들어. 기꺼이 몸을 바치는 것처럼 보이게. 이렇게 톤의 밸런스를 잡아 주면, 플레이어가 권력을 휘두르기 쉬워지지.
‘신자’와 짝을 이루는 “CotL”의 또 다른 축이 ‘권력’이야.
플레이어가 선해지려 해도, 게임은 권력 행사라는 유혹을 들이대. 이를테면, 네가 죽어도 신자를 대신 제물로 바치면 부활할 수 있거든. 메커닉 자체가 플레이어의 등을 떠미는 식이지.

(교단 존속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사이토:
진짜 악신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은데.

윌턴:
게임에 내장된 권력 행사 메커니즘은 컬트의 본질이기도 해. 많은 컬트는 처음엔 선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시작하지.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지면, 윗사람들은 그 힘을 남용하기 시작해. 플레이어는 그 과정을 추체험할 수 있어.

사이토:
실제로 컬트로 인해 테러를 겪은 일본인의 입장에선, 남 일로만 느껴지진 않아.

윌턴:
그래도 플레이어에겐 선택지도 주어져. 권력으로 타인을 유린할지 말지, 결국은 플레이어의 선택이야. 매 행동을 차곡차곡 쌓아 가면서, ‘나는 선한 인간인가? 악한 인간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하고 싶어. 그렇게 자기 자신이란 인간을 알아 가는 거지.

사이토:
유럽·미국 창작자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에이전시(행위 주체성)’를 중시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당신도 그중 한 명이네?

윌턴:
에이전시는 중요해. 플레이어가 언제나 “난 선택의 자유가 있고,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게 필요하지. 실제으론 선택 폭이 그다지 넓지 않더라도 말이야. 내가 특히 중시하는 건 시스템의 실제 자유도라기보다, 그런 ‘느낌’의 부분이야.

(어떤 교주가 될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사이토: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에도 문득 유머가 생기더라. 예를 들면, 어떤 신자를 제물로 바치면 다른 신자가 와서 “왜 저 아이를 죽이신 거죠?” 하고 따지잖아. 블랙하고 슈르한 웃음이 있는 장면이지. 어떤 게임이든 게임플레이 루프는 단조로워지기 쉬운데, “CotL”에선 그런 유머가 루프마다의 악센트가 되는 셈이야.

윌턴:
게임플레이 루프에 필요한 건 신선함이야. 끊임없이 ‘신선한’ 놀라움을 줘야 하지. 던전에서 돌아왔을 때 플레이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던져 주면, 도파민을 끊기지 않게 공급할 수 있어.
유머는 그런 ‘플레이어가 예측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고, 거기에 플레이어가 웃음과 재미를 발견하지. “CotL”은 던전 파트가 진지하고 어두워서, 마을에 돌아와서 해피하고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갭 때문에 더 재미있어지는 거야.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방법

사이토:
“Cult of the Lamb”에는 콜로니 빌더, 핵 앤 슬래시, 로그라이크 같은 여러 장르가 섞여 있잖아요. 그 조합이 아주 잘됐어요. 처음부터 장르 믹스형 작품으로 가자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요?

윌턴:
던전 크롤과 콜로니 빌더, 이 둘을 오가며 순환하는 게임플레이 루프가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출발점은 “Stardew Valley”의 광산 전투였죠. 그걸 더 키워 보고 싶었어요.
선행작으로는 “Moonlighter”를 빼놓으면 안 돼요. 거점에서 아이템 상점을 운영하는데, 매입을 위해 던전에 내려가는 게임이거든요. 던전과 상점을 오가는 그 루프가 참 재미있었죠.
인기 장르의 알짜만 쏙쏙 뽑아오면 히트한다. 쉬운 산수예요.

(“Moonlighter”)

사이토:
말은 쉽네요… 그동안 “CotL”처럼 ‘알짜만 취하는’ 게임을 노린 사례가 많았지만, 결과는 처참했거든요. 막상 해 보려면 각 장르의 맛이 따로 놀아서, 평범한 디자인이 되기 쉽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CotL”이 성공한 이유는 알짜를 취하되,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라고 봐요.

윌턴:
정확해요. 우리도 그렇게 자부합니다.
제 게임 디자인 철학은 “플레이어를 걸러내는 식의 디자인을 해선 안 된다”예요. 제가 관여한 모든 게임에 공통되는 부분이죠.
왜냐면, 너무 어려우면… 제가 못 하거든요!
액션 게임은 정말 약해요. “CotL”의 노멀 모드도 제가 수차례 직접 플레이하면서, 제가 깰 수 있도록 맞췄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게임은 서툴지만 즐기고는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힘들여 재미있는 걸 만들었으면,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편이 더 해피하지 않겠어요?

사이토:
그래서 그게 ‘줄리언 모드’군요. 노멀로 클리어한 저도 수많은 ‘줄리언’ 중 한 명이었다는 뜻이고.

윌턴:
아뇨, 저보다 위예요. 저는 노멀 모드 최종 보스를 못 잡았거든요!
물론 인기 장르를 합치는 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장르마다 팬이 게임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난이도도 그래요. 특히 던전 크롤러 팬들은 하드코어 난도를 선호하죠.
지금도 “너무 쉽다”는 불만이 많이 옵니다. 하지만 그건 비(非)게이머까지 아우르는 넓은 층을 만족시키려 했던 결과의 부작용이에요.

사이토:
저도 어려운 게임은 못하지만, 말씀처럼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는 있어요. 문제는 그 욕구가 소위 캐주얼 게임으로는 잘 안 채워진다는 거죠. 게임이라는 매체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그 인정은 ‘게임다운 게임’이 아니면 잘 안 주거든요.

윌턴:
너무 친절하면 ‘접대받는 느낌’이 역하게 느껴지니까, 밸런스가 어렵죠.
비밀 하나 밝히자면, “CotL”에는 자동 난이도 조정 시스템이 있어요. 플레이 양상을 모니터링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익숙지 않거나 전투 액션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슬쩍 구명줄을 던집니다. 이를테면 간발의 차로 회피에 실패했어도 피해가 들어가지 않게 판정에서 봐준다든가요.
그렇게 해서 여러 번 실패한 플레이어가 ‘난 못하나 보다’ 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하죠.
다만 자동 조정은 ‘중간 이하’ 난이도에서만 작동해요. 고난도를 고르면 발동하지 않아요.

사이토:
낮은 난이도는 자칫 ‘대충 만든 것’으로 여겨지기 쉬운데, 사실은 높은 난이도 게임만큼이나 공을 들여야 하죠.

윌턴:
“플레이어를 걸러내선 안 된다”는 철학은 플레이 디자인 밖에서도 일관돼요.
개발 초기의 “CotL”은 테마와 스토리가 조금 복잡했어요. “신자를 잃고 잊힌 옛 신이었던 주인공이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신자를 다시 모은다” 같은 이야기였죠. 고래 등 위에 올라타 하늘을 나는 설정도 있었던 듯하고요.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한눈에 와닿지 않죠? 플레이어에게 전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아요.
좋은 디자인은 한 문장으로 딱 설명돼,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이토:
게임 전반도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막힘 없이 흘러가도록 디자인돼 있네요.

윌턴: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플레이하게 하고 싶어요. 튜토리얼도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쏟아내 플레이어를 과부하시키지 않으려 합니다.
걷는 것밖에 못 하던 상태에서 공격(기능)을 해금하고, 그다음 회피를 해금하고—이런 식으로 메커닉을 하나씩 가르치는 편을 선호해요.
우리는 이 과정을 ‘스푼 피딩(스푼으로 떠먹여 주듯)’이라고 부르죠. 아기에게 스푼으로 밥 먹이듯, 하나씩 알려 주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길들이는 거예요.
“CotL”도 그렇게 설계됐어요. 전체 진행의 절반가량에 걸쳐, 게임의 모든 요소가 천천히 해금되도록요.

사용자와의 소통이 곧 마케팅으로

사이토:
Massive Monster는 게임 밖에서도 무척 친근하죠. 특히 유저 커뮤니티 관리에 굉장히 힘을 쏟는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 PAX Aus에선 팬끼리의 결혼식까지 주선했다던데요.

(팬끼리 결혼식을 올린 모습.)

윌턴:
PAX Aus는 호주에서 가장 큰 이벤트고, 유저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 보니 매번 전력을 다하게 돼요. 그래서 늘 회사한테 혼나곤 하죠. 브랜딩 구축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더라도, 그만큼 개발 시간이 빨려 들어가니까요.
지금은 커뮤니티 매니저와 마케팅 매니저가 커뮤니티 관리의 대부분을 맡고 있어요. 정말 훌륭한 커뮤니티로 성장했죠.
컬트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 그런지, 살짝 ‘컬트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요 (웃음).

사이토:
요즘 팬 커뮤니티에선 스트리밍 문화의 비중도 크잖아요. 전 우리 회사 작품의 게임플레이 방송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당신은 자기 작품 방송을 보는 편인가요?

윌턴:
안 보는 편이에요. 애초에 남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하다 보면 버그를 발견해 버리거나, 플레이어가 재미없어하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 받잖아요? 시청자가 즐거워하는 부분이, 개발자에겐 위가 아픈 부분이거든요.
생방송 말고, 팬 영상은 가끔 봐요. 인상에 남은 것도 있어요. 세계관을 분석하는 영상이었는데, “개발자는 거기까지 생각 안 했을걸”이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였죠. 그런데 워낙 설득력이 좋아서, 결국 저도 “분명 개발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었을 거야!” 하고 설득당해 버렸습니다 (웃음).

사이토:
플레이어끼리의 연결도 뜨겁죠. 최근 업데이트로 구현된 로컬 코옵은 정말 완성도가 훌륭했어요.

(공식 코옵 업데이트 티저 중.)

윌턴:
로컬 코옵은 반드시 넣고 싶었던 기능이었어요.
게임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즐거워지잖아요. 저도 친구들과 게임하며 자랐고요. 출시 초기엔 넣지 못했지만, 업데이트의 핵심 중 하나로 도입하기로 했죠.
물론 애초에 1인용 게임이니 매출에 크게 보탬이 되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로컬 코옵 도입에 맞춰 반값 프로모션을 진행했더니, 출시 2년 차에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죠. 그 직전에 신자끼리의 교배 관련 ‘섹스 업데이트’를 냈는데, 그보다 반응이 더 컸어요. 뜻밖의 수확이었죠. 다들 섹스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가 봐요.

사이토:
“Cult of the Lamb”은 친구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사실 이번 인터뷰의 질문을 비평 관점에서 짜 준 편집장 Jini도, 그게 “CotL”의 핵심이라고 하더군요. 게임플레이의 친절함, 내러티브에서 빛나는 유머, 거기에 방송과 로컬 코옵, 커뮤니티 지원까지—모두 플레이어라는 ‘친구’를 위한 게 아니냐고요.

윌턴:
훌륭한 지적이에요. 모두가 ‘친구’로서 즐겨 주신다면 기쁠 따름입니다…… 라고 해버리면 진부하게 들리지만, 저희도 그걸 실현하려고 개발과 마케팅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어요. 우리 자신도 즐기면서요. “CotL”을 플레이해 본 분들이라면 분명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그럼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까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봐도 될까요?

윌턴:
“Cult of the Lamb”는 유료 DLC를 개발 중이에요. 2년이나 무료 업데이트를 해 왔으니, 이제 DLC로 좀 벌어도 용서해 주시겠죠? (웃음) 그 DLC로 “CotL”의 업데이트도 마무리될 것 같아요.
동시에 신작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내용은 비밀이지만, 우리 ‘친구’ 여러분도 분명 재미있게 즐길 작품이 될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아웃트로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
자주 듣는 문구지만, 실제로는 아득히 어려운 도전이다.

게임과 플레이어는 서로를 선별한다. 난도가 높은 게임은 그 장벽을 넘을 실력, 혹은 그 실력을 기를 여유가 없는 플레이어를 걸러낸다. 반대로 스스로를 ‘게이머’라 여기는 이들 가운데는 캐주얼 게임을 아예 선택지에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난이도만이 아니다. 장르, 아트워크, 텍스트 분량, 분위기, 가격, 인지도, 제작 스튜디오… 고르는 데도, 골라지는 데도 요소는 무수하다. 그 결과 플레이어는 세상에 나와 있는 게임 중 일부만 즐기게 되고, 게임은 존재하는 플레이어 중 극히 일부만을 상대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이고 건전하다. 특정 게임을 좋아할 법한 층에 그 게임을 정확히 도달시키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이니 말이다. ‘모든 사람’을 타깃으로 상정하는 건 불합리한 광기에 가깝다.

하지만 “Cult of the Lamb”은 그 벽을 넘으려 했다. 우리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남들에게도 재미있을 것이고, 그 감성이 맞닿는다는 건 곧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정을 쌓기 위해 Massive Monster는 쓸 수 있는 수단을 다 썼다. 어떤 장르의 게이머에게도 닿도록 온갖 장르를 끌어안고, 하드코어 게이머가 질리지 않도록 디자인을 벼려 내며,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 층도 즐길 수 있게 플레이 중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까지 넣었다. 더 나아가 “Cult of the Lamb”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조차 스트리밍 기능을 통해 게임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개방적으로, 무엇보다도 개방적으로. 이는 윌턴이 친숙하게 몸담았던 플래시 시대의 게임과 인터넷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런 ‘접근성’에 대한 집요함이 결국 마케팅과도 맞물렸다.

게다가 타인에 대한 그 친절함은 윌턴의 성정에서 배어나온다. 그는 유저와의 교류를 즐겁게 이야기한다. 때로는 개발을 제쳐 둘 만큼 커뮤니티에 뛰어들어, 팬들과 이벤트·제작을 함께한다. 한때 온라인 게임에서 도박판 딜러였던 그에게는, 커뮤니티와 사람과 엮이는 일 자체가 곧 ‘놀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했든 아니든 “Cult of the Lamb”은 윌턴과 Massive Monster 그 자체를 체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지는 유쾌한 컬트. 언젠가 당신도 그 일원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