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4

『Suzerain』아타 세르게이 노박 –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치적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머리말】

내러티브와 정치.
이 일견 상충되는 요소를 융합하여 성공을 거둔 인디 게임이 존재한다.
독일의 Torpor Games에서 2020년에 발매된 ‘Suzerain’이다.
불안정한 민주주의 국가인 소드랜드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 경제, 교육, 치안, 외교, 전쟁 등 각 분야의 정치적 과제부터 주인공 자신의 가정 문제, 암살과 같은 음모와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결단을 내려가는 텍스트 기반의 RPG다.
지금까지 게임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던 정치의 역학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현실감 있는 스토리에 담아 완성하여 큰 화제를 모았고, 독일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보도지인 ‘데어 슈피겔’로부터는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현실적인 정치 게임”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24년 8월, I.N.T 편집부는 독일로 날아가 이 작품의 개발사인 Torpor Games를 취재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Torpor Games의 공동 창업자이자 ‘Suzerain’의 디렉터인 아타 세르게이 노박(Ata Sergey Nowak) 씨다. 터키인과 독일인의 부모 아래 태어나 오랫동안 터키에서 살아온 배경을 가진 그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정치와 게임의 관계, 그리고 인디 게임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아래 이미지에는 비공식 일본어화 MOD를 사용한 상태의 스크린샷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Suzerain』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듣는이・편집 /Jini
듣는이・기획・질문 입안/사이토 다이치
집필/치바 슈우
통역/J-mon
사진/JUMPEITAINAKA
번역/아키야마 하야토

“놀면서 정치를 배운다” 를 실현한 걸작

사이토 다이치(이하, 사이토):
WSS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사이토 다이치입니다. 아타 님을 뵙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수저레인’은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도 크게 즐겼고, 저 자신도 내러티브성이 높은 작품을 다루는 프로듀서로서 경의를 표합니다.

아타 세르게이 노박(이하, 아타):
Torpor Games의 아타 세르게이 노박입니다.
일본에서 쾰른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꽤 긴 여정이었을 텐데요?

사이토:
도쿄에서 비행기와 고속철도를 갈아타고 약 15시간 정도일까요.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우표를 잘못 사는 해프닝도 있었고요… 하지만 어떻게든 당신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Suzerain’은 완전히 신선한 게임입니다. 놀면서 정치의 현실성과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Suzerain’은 어떤 정치 교과서보다도 이해하기 쉽게 정치의 본질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고 확신했습니다.
정치가가 어떤 직업인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결단을 내리는지. 어떤 정책이 좌파적, 혹은 우파적으로 여겨지는지. 어떤 경제 정책을 선택했을 때, 그 영향이 경제 이외의 분야에 어떻게 미치는지. 어떤 유혹이 있고, 왜 그것에 굴복하게 되는지… 그런 다이내믹스를 교조적인 형태가 아니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정말로 훌륭합니다.
정치학을 배우는 대학생이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한 번은 ‘Suzerain’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분들에게 더욱.

아타: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작품에 담은 의도를 이해해주셔서 기쁩니다.
사실, ‘Suzerain’을 가장 많이 플레이해주는 것은 젊은이들입니다. 플레이어의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 16세에서 29세의 젊은 층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저희에게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원래 ‘Suzerain’에는 초기 콘셉트로 “플레이어에게 안전한 공간에서 엔터테인먼트로서 정치의 프로세스를 체험하게 하고, 다른 플레이어와도 정치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을 내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콘셉트를 즐길 주요 층은 아마도 연령대가 높은 성인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쁜 오산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즐겨주었고, 더욱이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연방의회의 미디어 문화위원회 세션에서도 “젊은이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툴”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사이토:
그 평가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저는 ‘웅변회’라는 변론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몇 명의 총리대신도 배출했습니다. 저 자신도 정치가가 되고 싶어서 그 문을 두드려 밤낮으로 나라와 정치의 모습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서클에는 우파도 좌파도 그 외도 다양한 사람이 있어서, 각각의 주의주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통감한 것은,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는 것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점입니다.
정해진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을 갖게 되기까지는, 각자 나름의 맥락과 과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논하려 할 때, 서로의 주장만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동의한다/동의하지 않는다와 같은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Suzerain’에서는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를 통해 여러 가지 사고를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특정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체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기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과 정반대의 사상을 가진 사람에게도 공감이 싹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정치 교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이기에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느낍니다.  저도 학생 때 이 게임을 접했다면, 친구들과 더 유의미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타:
바로 그것이 저희의 핵심입니다. 바로 저희는 “이해와 공감”을 ‘Suzerain’의 핵심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즉, 저희는 ‘Suzerain’을 통해 플레이어가 정치가에 대해, 평소와 다른 시각에서 공감(엠파시)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특히 ‘독재자’라고 불리거나 세간의 비난을 받는 정치가가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정치가나 정치 지도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민사회는 흔히 그들을 단순화된 이야기나 고정된 캐릭터 유형에 맞춰 논하기 마련입니다. 독재자를 악마처럼 폄하하거나, 흠 하나 없는 성인군자로 이상화하는 식이죠. 하지만 그런 접근은 정치가의 인간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사회 어느 계층의 어떤 인물이라도, 그 사람의 인격과 개인적인 경험은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열린 숙의를 위한 기초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게임의 내러티브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님가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에서는 일방향적인 이야기를 읽는 것만이 아니라, 선택과 분기와 리플레이를 통해 여러 시점에서의 맥락과 상황을 자기 일처럼 롤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체험의 가능성을 저희는 이끌어냈습니다.

터키의 다문화 환경에서 자라고, 게임으로 역사에 흥미를 가진 소년 시절

사이토: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것은, 그런 매우 특수한 ‘Suzerain’을 왜 아타 님와 Torpor Games가 만들려고 했는가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상황을 경험해왔는지.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알고 싶습니다.

아타:
저는 스스로를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리미널… 즉 경계적 존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3년에 터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독일인이고, 어머니는 터키인입니다. 저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독일과 터키의 사이에서 살아왔습니다. 대학 시절까지는 터키에 살았고, 2018년부터는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이중 국적이지만, 교류하던 친구들도 다국적 가정을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프랑스계 터키인, 영국계 터키인, 독일계 터키인…라는 식으로요. 물론 저희 Torpor Games의 스태프들도 이런 복잡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다문화적인 환경이 우리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문화권의 경계에서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면, 자신의 세계관이 양자적이라고 할까요, 흔들리는 상태로 유지되고, 자신과 다른 시각이나 공감하는 방법을 얻어갑니다.

사이토:
어떤 식으로 게임과 만났나요?

아타:
제가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플레이했던 게임은 MS-DOS의 ‘FIFA’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시티 2000(SimCity 2000)’도 기억에 남습니다. 스포츠 게임과 도시 건설 게임이라는 완전히 다른 장르지만, 돌이켜보면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연결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경험들이 ‘게임은 드라마나 소설에 못지않은 전달 도구’라는 현재의 지론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imCity 2000』)

사이토:
실제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도 역시 게임이었다는 것이군요.

아타:
네.
학교 수업에서는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대신, ‘Total War(토탈 워)’ 시리즈, ‘Stronghold(스트롱홀드)’ 시리즈, 그리고 ‘Hearts of Iron(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를 비롯한 Paradox Interactive(파라독스 인터랙티브)의 역사 전략 게임들이 역사를 접하는 입구가 되었습니다. 이들 타이틀을 플레이하면서 다루어진 주제를 깊이 파고들고 싶어져서 역사 수업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이들 작품을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겼다는 점입니다. 게임은 ‘현실’이라는 벽을 뚫고 우리를 가상 세계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자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힘을 잘 활용하면, 플레이어의 자발적인 학습이나 계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엔터테인먼트성에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아무리 사실에 충실하더라도 무미건조한 게임은 플레이어의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를 자극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Stronghold』)

사이토:
놀이에서 흥미를 가지고 연구의 기쁨을 알고, 그 연구에서 게임 개발로… 아름다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아타 님는 게임 개발의 커리어의 원점이 MOD 제작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타:
‘Project Reality(프로젝트 리얼리티)’죠.

사이토:
‘Project Reality’?

Jini:
아, ‘프로젝트 리얼리티’ 말이군요! 온라인 FPS ‘Battlefield 2(배틀필드 2, BF2)’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MOD죠. 저도 한때 정말 열중했었습니다.

아타:
설마 일본에도 ‘PR’ 플레이어가 있을 줄은, 놀랐네요 (웃음).
원래 ‘BF2’에서는 각자 역할이 할당된 상태에서 팀의 일원으로 싸우지만, ‘프로젝트 리얼리티’에서는 그 팀플레이가 더욱 세분화되고 심화됩니다.
저는 주로 ‘스쿼드 리더’라 불리는 팀 리더 역할을 맡아 플레이했으며, 그 경험을 통해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연마했습니다. 정말로 빠져들었죠. 8000시간은 플레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Jini:
8000시간이라니, 정말 엄청나게 몰입하셨군요. 그런데 ‘PR’과의 연관성은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게임 화면만 보면 흔한 FPS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전장’에서의 궁극적인 롤플레이라 할 수 있죠. 병사로서, 혹은 하사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체험을 제공합니다.

아타:
결국에는 ‘프로젝트 리얼리티’의 제작팀에서 테스터도 맡게 되었습니다. 게임 만들기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그게 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MOD 커뮤니티를 통해 플레이하는 것과 제작하는 것 사이의 장벽을 넘어갔습니다.
‘프로젝트 리얼리티’ 이후에는 ‘하츠 오브 아이언 3’의 MOD 팀인 ‘Black ICE Team(블랙 아이스 팀)’에 합류하여, 거기서 본격적으로 MOD 제작을 했습니다. 주로 2D 아트의 스프라이트나 콘텐츠 디자인 등의 제작과 커뮤니티 커뮤니케이터 같은 부분입니다.

사이토:
‘Black ICE’도 전설적인 MOD 팀이네요. 파라독스 공식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고, 본편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Black ICE의 MOD. 사진은’Hearts of Iron IV’)

아타:
고등학교 시절 내내 MOD에 푹 빠져 있었네요. 쓰디쓴 경험도, 달콤한 경험도 모두 그 시절에 겪었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괜히 나이가 든 듯한 기분이 드네요.

사이토:
MOD가 청춘이네요. 멋집니다.

우정으로 탄생한 ‘Suzerain’

아타:
또 다른 터키에서의 청춘 시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라면 일케 카라데미르(ILKE KARADEMIR)와 오즈군 키릿(OZGUN KILIT) 두 사람을 만난 것이겠네요.
두 사람은 Torpor Games의 공동 창업자입니다. 만남은 2007년으로, 9학년(14-15세 학년,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 때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부터 셋이서 게임 제작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MOD 제작은 저만의 취미였습니다. 대신 그들과는 자주 게임을 했고, 학교 점심시간에는 매일 같은 나무 그늘에 모여 학교 일, 공부, 세상 일, 애니메이션, 사랑 이야기…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공유했습니다.

사이토:
그런 친구들과 ‘Suzerain’을 만들게 된 경위는 무엇이었나요?

(공동 창업자 세 분)

아타:
사실, 우리는 각자 게임이나 MOD를 만들고 있었지만, 세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든 적은 없었습니다. 졸업 후 10년 후에도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진로는 제각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밀접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고등학교 시절 그 나무 아래에서 보냈던 시간 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게임 이야기는 우리를 언제나 친밀하게 연결해주었습니다.

그 젊은 시절, 그들과의 지적인 논의를 떠올리던 중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Hearts of Iron’や’Total War’처럼 지휘관이나 지도자가 되어 전쟁이나 정치를 다루는 게임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철저히 전략과 전술의 심오함을 즐기기 위해 설계되었을 뿐, 이야기나 인간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기계적인 시스템 기반이 아니라 RPG나 어드벤처 게임처럼 더 인간적으로 정치가의 감정이나 체험을 파고든 게임이 있어도 되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바로 쾰른에 있는 일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도 아직 개척하지 않은 분야야.’
Torpor가 설립되기 3년 전의 일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정말로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개발 초기에는 정말 힘든 자금난에 시달렸습니다. 세 사람 모두 게임 개발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다른 플타임 정규직에 취직하기도 했습니다. 제 은행 개인 계좌가 마이너스 1700유로까지 내려가 파산 직전에 이르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며 게임의 내용과 방향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나눴고, 언제나 우정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했던 오랜 시간 동안의 주제 공유와 논의는 제 인생 그 자체이며, 동시에 제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Jini:
그렇군요. Paradox 작품에 대해 ‘인간성을 불어넣는다’는 비유는 정말로 공감이 갑니다. 그런 점에서, Paradox가 사실 기반의 역사 시뮬레이션을 추구하는 반면, ‘Suzerain’은 완전히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즉, Paradox 작품에서는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의 흐름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 흐름을 따르거나,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Suzerain’에서는 소드랜드라는 국가의 역사나 세계 정세를 플레이를 통해 처음부터 배워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야말로 ‘Suzerain’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타:
이는 마치 역사 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차이와도 같죠.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와, 미지의 세계를 처음부터 알아가는 즐거움은 각각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점은 크리에이터들이 탐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 백지의 캔버스에 상상의 붓을 자유롭게 휘두르며 매우 풍부한 세계와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라는 족쇄가 있는 역사 픽션에서는 그런 시도는 어렵습니다.
한편, 단점은… 가상의 세계에 대해 플레이어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는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정 설명을 소홀히 하면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고 지루함을 느낄 위험이 있습니다.

사이토:
저도 ‘Suzerain’이 픽션이라는 것에 일관되게 압도되었습니다. 무엇에 압도되었냐면 캐릭터입니다. 본작에는 대통령인 주인공 안톤 레인을 비롯해 그의 측근이나 가족, 전속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그 캐릭터들을 어떻게 그려나갔는지 꼭 듣고 싶습니다.

아타:
저희는 먼저 캐릭터 프로필을 담은 시트를 작성하고, 이를 인물 관계도에 배치한 뒤, ‘이 세계에 이런 역할의 캐릭터가 등장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라고 상상을 돌리듯 이야기를 구성해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기존의 픽션이나 실존 인물에서 나올 법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참고하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젤렌스키는 어떻게 보일까? 푸틴은 어떻게 평가받았나? 메르켈은? 에르도안은? 아사드는? …… 이런 식으로요.
그런 과거 다양한 지도자들의 심리를 고민했던 경험도 주인공 안톤 레인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이토:
그렇다면 ‘Suzerain’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인간미 넘치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부통령이자 절친인 페트르(Petr Vectern)가 좋은 예입니다. 알코올 중독에 여자 문제가 많고 무능하고 귀찮은 녀석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게임 중에는 그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을 강요받지만 저는 도저히 버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페트르를 구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친구인 페트르)

아타:
사이토 님가 느낀 그 감정이야말로 저희가 캐릭터의 묘사를 통해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친한 사람이 당신과 전혀 상반되는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사람이 의도치 않게 당신의 사회적 지위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자신의 이익이나 도덕에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그래도 여전히 “친구”로 있을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사이토:
정치를 소재로 한 게임에서 우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타:
가능하다면, 친구를 산성 용액에 녹이는 듯한 끔찍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법이지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페트르를 산성 용액 속으로 내던지는 결말도 있을 수 있다.>

격동의 시기를 체험한 학생 시절

사이토:
그런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는 동안 아타 님는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Suzerain’의 그 깊이로부터 추측하건대 정치나 역사를 전공하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아타:
사실 대학에서의 전공은 통역과 번역입니다. 그렇다고 정말로 통역사나 번역가가 되고 싶었는가 하면… 입학 당시부터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과에서의 체험 자체는 유익했습니다. 통역과 번역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정치나 국제 관계, 외교, 무역 등 이전부터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던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토:
그런 점에서는 ‘Suzerain’은 학문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군요.

아타:
동시에, 저 자신의 터키와 독일 이중 국적이라는 정체성에도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대학 시절에는 정치나 국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11년에 에르도안 정권이 수립된 이후 터키 국내에서는 우파도 좌파도 점점 과격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정치의 구조나 사회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도안에 대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80년대와 같은 군사 정권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많은 터키 시민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터키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시대에 너를 (독일이 아니라) 터키 대학에 보내는 것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어머니는 80년대에 학생 시절을 보낸 분이셨고, 당시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간신히 그때와 같은 강압적인 세상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큰 부패 사건이 잇따라 밝혀졌습니다. 정부의 부패에 불만을 품은 민중이 일어나 시위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게지 공원 시위”입니다. 저도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터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고 합니다.

(편집부 주석:1980년에 발생한 ‘9월 12일 쿠데타’를 의미함. 1970년대 후반, ‘회색 늑대’와 ‘TKP’로 알려진 극우·극좌 조직들에 의한 정치적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터키군 참모총장 케난 에브렌 등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 이 사건으로 폭동은 가라앉았지만, 8만 명 이상이 투옥됨.이미지는 2013년 터키에서 발생한 시위.)

Jini:
일본에서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이나 정부의 대응을 둘러싸고 큰 정치적인 움직임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움직임도 매우 소극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투표율의 낮음도 지적됩니다. 이른바 정치적 무관심〈아파시〉죠.

아타:
정치 참여의 감각의 결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통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체제라 해도 직접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 외의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Suzerain’을 위한 리서치를 통해 발견한 것은 우리가 정치적 프로세스에서 주체성(에이전시)을 거의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는 감각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저해하고 체제에 더 많은 권력을 줍니다. 권력을 강화한 체제에겐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은 방해물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더욱 멀리하려 합니다. 이런 권력 강화와 소외감의 사이클이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사이토:
‘에이전시’라는 단어은 일본인 독자에게는 조금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타:
게임으로 비유해볼까요.
게임에서도 준비된 이야기대로 진행하는 리니어 게임과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으로 이야기가 분기하는 논리니어 게임이 있습니다. 논리니어 게임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플레이어에게 미래를 선택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게임에서의 경험에 더 개인적인 연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당신은 행동을 일으키는 주체이며 자신의 주체성(에이전시)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감각은 다음 행동, 더 나아가 다음 행동을 유발합니다.

사이토:
바로 ‘Suzerain’의 스토리텔링이군요.

아타:
그렇습니다. 인터랙티브하다는 점에서 사실 게임은 정치 참여의 표현에 적합합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정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을까? 게임만의 접근법은 없을까?”라는 과제는 제 안에 끊임없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게임 제작에 필요한 것은 ‘리서치’

사이토:
저는 본작의 콘셉트인 ‘비디오 게임으로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에 강한 흥미가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제작 시에 중요시한 것을 알려주세요.

아타:
첫째도 둘째도 리서치입니다.
리서치는 역사나 정치를 다루는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창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역사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철학이나 사상에 관한 문헌이나 자료를 폭넓게 탐독했습니다. 그중에는 ‘손자병법’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션으로도 ‘더 크라운’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정치나 그 주변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타:
취재 과정에서 게임 만들기에 중요한 두 가지 발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역사는 반복되는 사건의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도 인류는 비슷한 희극과 비극을 연기해왔습니다. 이런 패턴을 추출함으로써 게임에 보편성을 담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다양하고 복수적인 시점’입니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어떤 인물의 시각에서 본 인상과 다른 인물의 시각에서 본 인상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주제에 다각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놓치기 쉬운 뉘앙스를 포착하고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정치를 다루는 게임인 만큼, 이 점을 철저히 중시했습니다.

또한, 기존 게임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전략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다루고자 하는 테마와 가까운 선행작들을 직접 플레이하며 분석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Tyranny(티라니), 파라독스의 각종 전략 게임, 그리고 오스모틱 스튜디오의 Orwell: Keeping an Eye On You(오웰: 키핑 앤 아이 온 유) 같은 작품들 입니다.
게임이나 게임 장르의 역사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작품에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바퀴를 다시 발명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Orwell: Keeping an Eye On You』)

사이토:
‘Suzerain’은 멀티 엔딩이죠. 대통령에 재선되어 환희 속에서 끝나는 것도 있고 암살이나 쿠데타 등의 비극적인 결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트루 엔딩’이라는 엔딩은 있습니까?

아타:
개인적으로는 은퇴 엔딩을 좋아합니다. 정계의 소란을 뒤로하고 해변에서 여유롭게 릴랙스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좋은 노후’가 아닐까요?

농담은 제쳐두고 공식적으로는 트루 엔딩 같은 ‘정답’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에서의 승패는 플레이어를 끌어들이기 위한 편의적인 디자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가들의 인생을 같은 인간으로서 체험해 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정치가들 또한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인 이상 어딘가에 승패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를 넣지 않으면 상품으로서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복수의 엔딩을 준비하는 것도 그런 수단 중 하나입니다. 다만, 플레이어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하지만요.

사이토:
우열과는 별개로, 노골적인 악을 다루는 장면도 존재합니다. 뇌물이나 암살 같은 행위도 그렇고, 플레이를 잘하면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게임 내에서의 악행은 어딘가 모르게 신기한 쾌감을 동반합니다.

아타:
우리는 권력 남용의 메커니즘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원하는 것을 빼앗고 싶거나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욕망과 같은 에고가 쉽게 충족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욕망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 세계에서, 그리고 정치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이토:
한편으로 ‘Suzerain’에서는 소드랜드라는 나라 자체가 구조적으로 악을 저질러야 하는 듯한 디자인이 되어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

아타:
그것 역시 ‘이해와 공감’이라는 우리의 철학의 일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제한된 경험밖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를 선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운 도덕적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어 평소에는 하지 않을 행동을 취하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목표로 한 체험 중 하나였습니다.
인간은 공통점이 없는 타인에게는 감정 이입을 잘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공감이 싹틉니다. 우리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그 인생의 외부에서 윤리적으로 비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러한 행위에 이르기까지 거친 변천을 알게 되면 단순한 비난만은 아닌 감정도 생겨납니다. 게임이라면 그 심리를 인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행동에는 항상 선택지가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청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본과 독일의 인디 문화

사이토:
발매 당시의 퍼블리셔인 Fellow Traveller(펠로우 트래블러)는 호주의 회사죠. 독일의 회사나 조직으로부터 지원은 받지 못했나요?

아타:
게임 업계를 포함해 독일의 비즈니스 문화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업계나 국가 모두 새로운 도전이나 벤처에 쉽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독일에서는 큰 꿈이나 비전을 가지는 것이 크게 장려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나 서유럽·북유럽 국가들을 보면 다양한 방면에서의 백업이 있어서 부럽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들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그런 지원 체제는 어느 나라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는 있나요?

사이토:
일본의 인디 퍼블리셔 한 회사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음, 없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음, 충실하다고는… 음…

아타: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비슷하니까요.(웃음)

사이토:
이것은 일본의 인디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다지 스타트업 기업이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습니다. 거의 취미나 부업, 혹은 동인이라는 형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80년대, 90년대의 일본 인디 디벨로퍼는 대형 회사의 하청이라는 포지션에서 성장해가는 루트도 있었습니다. ‘포켓몬스터’의 게임 프리크가 그 대표죠.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인디 게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죠.

(’포켓몬스터 레드’)

하지만 오늘날 일본의 게임 산업은 PC 게임 시장의 성장과 모바일 게임 산업의 쇠퇴로 급속한 구조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형 퍼블리셔가 프로젝트의 수를 줄여나가고 그로 인해 소규모 디벨로퍼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타:
작은 개발 회사가 대형 자본의 논리에 휘말려 미래를 빼앗기는 비극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기업에 인수된 중소규모 개발사가 대기업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폐쇄되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문제입니다.
투자자들이나 대기업의 요구에 얽매여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망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성장 가능성을 가진 인디도 금방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이토:
대기업도 한때는 인디였는데 말이죠. 일본에서도 80년대나 90년대의 게임은 지금 보면 대부분 인디 게임입니다. 일본 게임 업계는 이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일본 인디 게임의 혈맥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타:
효율적인 이익 추구만을 옳다고 하면 기존의 시각에 집착하여 창조성이 말라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디 게임은 새로운 시각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실험장일지도 모릅니다.

사이토:
공감합니다. 인디 게임은 특정 집단을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힙합에서 말하는 레페젠(Represent)입니다. 대기업에서 간과되거나 무시되는 듯한 문화를 포착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기업이 그것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타:
우리는 인디 개발자는 게임 업계 전체의 R&D(리서치 앤드 디벨롭먼트) 기관일지도 모릅니다.
대형 게임 기업은 확실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론을 확립한 후에는 모험적인 실험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인디 게임에서 성공을 위한 방법은 실험과 기존 규범의 타파에 있습니다.
피카소는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모방하거나 훔친 예술가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고 우리의 후계자가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창작에 중요한 것은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이토:
제가 게임 프로듀서를 하면서 이렇게 I.N.T에서 게임 저널리즘을 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인디 게임은 기적이나 마법처럼 무에서 하룻밤 사이에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꾸준히 노력해서 만들고 있고 거기에는 게임 전체의 역사나 개발자 개인의 배경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듣고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여 이해와 공감의 씨앗을 뿌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쌓아가면 지금은 침실에서 작은 게임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들로부터 언젠가 ‘포켓몬스터’가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DLC, 번역, 차기작

사이토:
그러면 마지막으로 ‘Suzerain’의 DLC나 차기작의 전망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DLC인 ‘킹덤 오브 리지아(Kingdom of Rizia)’. 이것은 올해 3월에 이미 출시되었네요.

(’Kingdom of Rizia’)

아타:
『Suzerain』 본편의 패럴렐 스토리입니다. 플레이어는 리지아 왕국의 국왕인 롬루스 트라스 왕에 역할을 맡습니다. 왕으로서의 권한을 활용해 칙령을 내려, 이를 통해 정책을 변경하거나 건물을 쉽게 건설할 수 있습니다. 또한 『Suzerain』 본편에서의 결정이 이 DLC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습니다.

사이토:
‘Suzerain’ 본편에서 무대가 된 소드랜드는 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DLC의 리지아 왕국은 군주제입니다. 왜 군주제를 테마로 삼았나요?

아타:
사실 군주제 그 자체의 본질을 밝혀내는 것이 주안점은 아닙니다. 왕으로서의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다기보다는 군주제의 중앙집권적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절대적인 권력이 어떻게 절대적으로 부패하는가 하는 점을요.
롬루스 트라스 왕은 안톤 레인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리지아에서는 의회는 형식화되어 있고 왕권을 제어할 세력은 미약합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Suzerain’ 본편과의 대비를 통해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Jini:
‘Suzerain’ DLC는 세 번째도 있죠. 그런데 완전 신작인 ‘The Conformist(더 컨포미스트)’는 어떻습니까?

(『The Conformist』)

아타:
‘더 컨포미스트’는 ‘Suzerain’ 시대에서 20년 전을 배경으로 한 프리퀄입니다. 『Suzerain』이 통치자의 시점에서 국가를 바라보는 이야기였다면, 『The Conformist』는 프로파간다 담당자(Propagandist)로서 정치의 하층부에 위치한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시스템을 일신하여 보다 RPG에 가까워질 예정입니다.
장르로는 세미 샌드박스 RPG랄까요.
아마도, 『Conformist』를 플레이한 후 다시 『Suzerain』을 플레이한다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 젊은 시절의 안톤 레인도 등장합니다!

사이토:
‘Suzerain’ 유니버스에 있으면서 ‘Suzerain’ 본편이나 DLC와는 다른 시점이 되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주목해주셨으면!”이라는 새로운 요소는 있나요?

아타:
본작의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는 ‘프로파간다 인플루언스 시스템’입니다.
어떤 퀘스트에서 플레이어가 취한 행동은 개인이나 조직에 영향을 미치며, 주인공이 바라보는 수도의 풍경을 변화시킵니다. 또한, 사회 곳곳을 이동하며 조직, 장소,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각각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현은 꽤 어렵지만요…

사이토:
게임 개발자는 스스로에게 높은 허들을 부과하기 마련이죠. 그래도 꼭 실현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언젠가 정치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때는 조언을 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아타:
물론입니다!

【후기】

“게임은 정치를 체험하게 할 수 있는가?”
반어적인 의미도 가졌을지 모르는 이 질문에 ‘Suzerain’은 힘차게 이렇게 답한다.
“가능하다. 오히려 게임이기에 정치를 다른 미디어보다도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터키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독일에서 게임 회사를 세운다. 그것 자체가 터키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독일을 상징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성을 추출하여 “혁명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위치의 인간 이야기를 어느 나라의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인터뷰 중 아타 님이 여러 번 반복했던 말이 있다. “열림”이다. 입장이나 의견이 다른 상대와도 사귀어 보면서 거기에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대화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게임은 그를 위한 툴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Suzerain’은 게임 전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몽상이 아니다. 우리는 독일에서 그 예감을 엿볼 수 있었다. 4시간에 걸친 열기에 찬 인터뷰 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일본의 청년이 터키에서 온 청년과 재회를 약속하며 굳게 악수를 나눈다. 게임을 매개로 한 공감과 이해가 거기에 있었다.
같은 만남은 분명 다른 장소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역사란, 반복되는 것이니까.